신사업 팀 팀장의 직책을 맡다 보면 대•내외적으로 사업이나 상품 아이디어를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습니다. 필자가 1,000가지 아이디어 노트에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메모하는 것을 주변에서 알고 있는 것도 그 이유가 되겠죠.
아이디어를 찾아 비즈니스로 만들어내는 일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의 정의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아이디어를 갈구하고 있는데 ‘정말 아이디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제기되죠. 게다가 아이디어와 의견의 차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도 합니다. 의견은 아이디어일까요? 아니면 생각일까요? 생각은 아이디어일까요?
아무튼 시장 경계가 허물어진 이 시대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탁월한 아이디어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아이디어에 관련된 일을 오래 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아이디어를 찾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아이디어를 찾는 현장은 주위에 흔합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프로젝트 모임에서도 과제 주제를 찾기 위해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이도 사업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마케터도, 광고 카피라이터도, 방송사 PD도 작품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그 흔한 아이디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또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아마도 대다수의 팀은 이렇게 하지 않을까요? 우선 여럿이 모입니다. 그리고 하나씩 생각나는 대로 아이디어를 말해보죠. 가끔 진지하게 경청하기도 하고, 짧게나마 부정적 의견들이 곁들여집니다. 시간이 흘러 지칠 때쯤 아이디어도 고갈되죠. 그리고는 마칠 때에 각자에게 숙제가 주어집니다. ‘아이디어를 더 찾아보자.’는 누가 가져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숙제죠. 시간이 흘러 다시 모여도 딱히 맘에 드는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중에 제일 나은 듯한 아이디어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킵니다.
이 과정을 몇 번 거치는 팀들이 내는 아이디어 발굴 프로세스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① 아이디어 소재가 널뛰기한다.
아이디어 자체는 애초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하다 보니 아이디어 소재는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디어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게 되죠. 즉, 아이디어 소재 범위를 더 넓혀야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디어 회의는 팀 단위로 다수가 모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아이디어 회의에 참석하신 직장인들은 이런 회의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한 번쯤 경험했을 겁니다.
다수의 소재를 찾든 다수가 참여하든 널뛰기하듯 맥락 없이 아이디어가 나오다 보면 실행하기가 어렵거나, 잘 모르는 영역의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증빙하듯 문서에는 수많은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지만, 아이디어의 수준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던지거나, 검색을 통해 찾아본 사례를 열거해둔 정도에 불과합니다.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면 팀장은 팀원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팀원들은 일도 많은데 왜 이렇게 회의를 하느냐고 속으로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초기 아이디어의 가치에 대해 쉽게 속단해버려서 더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할 기회를 파괴해버린다는 점입니다.
② 탁월한 아이디어가 아닌 반대하지 않는 아이디어로 낙점이 된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아이디어 회의를 지속하면 피로감이 누적되어 이제 선택의 시간이 오게 됩니다. 탁월한 아이디어보다 부정적 의견이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가 ‘탁월한 아이디어’의 대타로 등장하는 것이죠.
특히 누군가가 강하게 제시한 아이디어 중 잘 모르는 영역의 아이디어일 경우 낙점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찾아봐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으니’ 딱히 문제 안 될 만한 아이디어로 암묵적으로 합의하게 됩니다. 아이디어 찾는다고 마냥 시간 낭비를 할 수도 없고 그런 시간 자체를 인정받기도 힘들기 때문에 아이디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동의해버리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③ 구체화할수록 확신이 아닌 갈등이 늘어난다.
이렇게 채택된 아이디어가 상품이나 비즈니스로 구체화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제비뽑기하듯 뽑힌 이 아이디어가 정말 탁월한 아이디어였다면 다행이겠죠. 그러나 그런 행운은 흔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스케치로 그려지고, 스토리보드로 상세하게 그려지고, 적당한 외관을 갖추고, 기능이 연결되기 시작하면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하고 동의했던 멤버들은 이제야 그 아이디어의 실체를 직시하게 됩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딱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에, 뭐라도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 아이디어를 각자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그려왔던 모습이 달랐던 것을 느끼기 시작하죠.
비즈니스 현장에서 구성원들의 확신이 있어도 실패할 수 있는데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는데…’라는 상황이 닥칩니다. 그리고는 애초 아이디어를 낸 사람 탓을 하며 서로가 책임을 회피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빙산의 일각과 같다.
93년 대학 입학 후 읽는 철학 책에 아래의 글귀가 생각납니다.
“양(量)이 질(質)을 낳는다.”
철학 책에 나온 그 글귀를 지금 떠올려보면 아이디어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빙산의 일각을 떠올려보세요. 바다 수평선 위에 빙산의 일각이 떠오르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에 거대한 빙산의 본체가 존재해 줘야 합니다.
탁월한 아이디어가 빙산의 일각이라면 그 아래에 있는 거대한 빙하 덩어리는 그냥 어설프고 부족하고 잘 모르는 아이디어들의 뭉치인 셈이죠. 이 아이디어들이 거대한 양으로 존재해야 빙산의 일각 같은 질 좋은 탁월한 아이디어가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영역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면 되는 것 아냐?’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풍부하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잘 모르는 영역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잘 모르는 영역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팀원들이 그 아이디어에 더할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습니다. 즉, 파편적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양이 질을 낳는 결과를 낳을 수 없게 됩니다.
아이디어 빙산의 일각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면
그렇다면 아이디어의 양은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질 좋은 아이디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답은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 특정 소재 안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 듯 파생된 아이디어를 만들어라.
결론적으로 양의 기준을 늘리는 과정에서 아이디어 영역보다 한 영역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여러 아이디어로 다시 만들어내거나 더 좋은 것으로 가다듬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초기 제안한 아이디어를 부족한 것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타인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듯한 부정적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초기 아이디어를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것을 제안한 사람의 공로를 인정해 주자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아이디어는 결코 좋은 결론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아이디어 동의한 그 누구도 비즈니스가 전개되는 동안 시련이 닥쳐도 밀어붙일 신념이 생기지 않았고, 그 아이디어의 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재의 범위를 한정하거나 축소하면 아무래도 피로감이 높을 것입니다. 단시간에 파생 아이디어를 찾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아이디어는 평소에 발상해야 합니다. 거대한 빙산처럼 아이디어의 절대적인 양은 결코 단시간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것을 기록하고 메모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파생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은 실행을 통해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파생 아이디어를 만들어보세요. 필자의 1,000가지 아이디어 노트에는 AI튜터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약 200개가 넘습니다.
이렇듯 개별 아이디어는 미미하고 부족하지만, 수면 속에 숨어있는 거대한 빙산의 조각이 되어 빙산의 일각을 떠받쳐주고 있습니다. 여럿이 힘을 합친다면 더욱 풍부한 아이디어 빙산을 만들어가겠죠.
● 누가 낸 아이디어야?
어떤 아이디어가 좋은 결과를 내면 ‘누구 아이디어야?’라고 묻게 되고 누군가가 지칭되면 그에게 칭찬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반대가 되면 어떨까요? 역적이 되죠. ‘영웅이 되냐, 역적이 되냐’의 갈림길에서 직장인들은 그냥 침묵을 지키거나 애초 창의성이 없는 이로 조직에 공표해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조직은 아이디어에 목말라 있고 창의적인 인재를 찾느라 큰 비용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아이디어가 부족해지게 만드는 환경 속에 사는 것은 아닐까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 그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누가 더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시켰어?”
글 l 강석태 책임 [‘아이디어 기획의 정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