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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Trend

위키(wiki)의 탄생

2016.08.16

정보를 공유한다는 개념은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와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에서부터 빈트 서프(Vint Cerf)와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에 이르기까지, 과거 컴퓨팅 분야의 여러 저명한 선구자들이 공통적으로 품었던 목표였습니다.

부시가 1960년대에 고안한 메멕스(Memex)와 하이퍼텍스트 개념은 1972년 카네기 멜론 대학의 ZOG와 1987년 시장에 나온 애플의 하이퍼카드(HyperCard) 등 하이퍼텍스트를 활용한 초기 지식 기반 시스템을 낳았습니다.

하이퍼카드는 프로그래머 빌 앳킨슨(Bill Atkinson)의 발명품입니다. 앳킨슨은 애플 매킨토시 원조 개발팀 30인 중 한 명이자, 그 유명한 비트맵 그래픽 생성 프로그램 맥페인트(MacPaint)를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와일드카드(WildCard)’라는 이름으로 개발되는 동안, 애플 팀의 또 다른 팀원이었던 켄트 벡(Kent Beck)은 퍼듀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석사학위를 받은 동료 프로그래머 하워드 커닝햄(Howard Cunningham, 워드 커닝햄이라고도 불림)에게 이 프로그램을 시연했습니다.

커닝햄은 하이퍼카드가 사실상 단일 사용자 카탈로그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하면서 비교적 사용자에게 편리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정보를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커닝햄은 1990년대가 시작될 무렵, 갈수록 발전해 가는 컴퓨터의 성능과 편재성을 활용할 새로운 솔루션을 찾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 설계 패턴을 분석하는 일에 푹 빠졌습니다.

그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1994년 일리노이주 몬티셀로에서 최초의 ‘프로그램 패턴 언어’ 컨퍼런스를 열었습니다. 이 컨퍼런스 참가자 중에는 일리노이 대학에서 당시 걸음마 단계인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위한 모자이크 그래픽 브라우저를 개발 중이던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그 중 한 명이었던 브라이언 푸트(Brian Foote)는 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커닝햄 앞에게 시연했고, 웹(Web)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작성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로 웹에서 찾을 수 있는 저장소를 만들어 전파하고, 공유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994년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커닝햄의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존 방식과 같이 커닝햄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텍스트 파일을 받아 이를 HTML로 변환하여 최종적으로 월드와이드웹에 게시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변환 프로세스는 한 사람이 수행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래서 커닝햄은 펄(Perl)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HTML을 모르는 사용자라도 정보와 프로그램 패턴을 입력하면, 스크립트가 해당 정보를 자동으로 HTML을 디스플레이 하여 웹페이지로 변환해 주는 양식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였습니다.

l 워드 커닝햄은 자신이 위키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만, 2012년 ‘닥터 돕스’ 저널과의 인터뷰에서는 “위키에 시간을 쏟아부었던 그 시절에는 매일 ‘이 짓을 빨리 그만둬야지. 내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일을 해야 한단 말이야.’라고 되뇌었죠.”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https://goo.gl/X9qnZC)

정보 공유와 공동 작업의 속도를 높이도록 설계한 자신의 발명품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던 중, 커닝햄은 전에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자신과 다른 승객들을 호놀룰루 공항에서부터 태워 날랐던 셔틀 버스의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버스의 이름은 ‘위키 위키(Wiki Wiki)’ 셔틀이었습니다. ‘위키(Wiki)’라는 낱말은 하와이어로 ‘빠른’이란 뜻입니다.

커닝햄은 자신의 발명품에 ‘위키위키웹(WikiWikiWeb)’이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1995년 3월 25일 본인의 회사 ‘커닝햄 & 커닝햄(Cunningham & Cunningham)’의 웹사이트 www.c2.com에 처음으로 설치했습니다.

2016년 위키피디아 15주년을 기념하여 ‘뉴렐릭(New Relic)’ 블로그 인터뷰에서 커닝햄이 밝혔듯이, 그가 원래 의도했던 위키는 “기본적으로 텍스트를 읽는 그 자리에서 텍스트를 작성할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웹에서는 정보를 읽는 장소가 따로 있고, 정보를 작성하려면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거쳐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전에는 웹에서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커닝햄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항목을 작성하여 사이트에 올릴 것을 독려했고, 덕분에 2004년이 되자 위키위키웹은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무려 25,000개가 넘는 항목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커닝햄이 작성한 항목은 300개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참여해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커닝햄은 위키의 콘텐츠를 편집하여 통제하지 않고 각 개인이 자유로이 사이트에 항목을 작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개방되어 있고, 수정 가능하며, 주로 웹을 통해 전파되는 지식의 보고 ‘위키’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커닝햄이 위키를 만든 이후 위키의 수는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현존하는 수많은 위키 중 상당수는 오페라(Opera) 웹 브라우저 전용의 오페라위키(OperaWiki)와 보이스오버(Voice Over) 인터넷 프로토콜 정보를 위한 Voip-info와 같은 컴퓨팅 측면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노래가사 위주의 ‘리릭위키(LyricWiki)’를 비롯한 인기있는 레저 관심사 중심의 위키, 2005년에 시작되어 지금은 스타워즈와 관련된 글이 80,000개가 넘는 우키피디아(Wookieepedia)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위키는 ‘위키피디아(Wikipedia)’일 것입니다. 알렉사(Alexa) 랭킹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방문자 수가 많은 웹사이트이니 말입니다. 이런 위키피디아의 탄생에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위키위키웹이며, 특히 프로그래머인 벤 코비츠(Ben Kovitz)의 역할이 컸습니다.

2001년 1월 2일, 코비츠는 샌디에이고의 타코 가판대 앞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동료인 래리 생어(Larry Sanger)와 함께 그가 작업 중인 위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생어는 지미 웨일스(Jimmy Wales), 마이클 E. 데이비스(Michael E. Davis), 팀 쉘(Tim Shell)이 소유한 웹 광고 회사인 보미스(Bomis)의 자금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의 편집장이었습니다.

생어는 동료 평가(peer-review)를 거치는 새로운 온라인 백과사전, 일명 ‘누피디어(Nupedia)’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지미 웨일스(Jimmy Wales)가 주도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고하는 형태의 누피디어는 무료로 운영하고 나중에 배너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었는데요.

그러나 개발에 착수한 지 18개월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누피디어가 보유한 글이 얼마 되지 않는 게 문제였습니다. 첫 해에는 20여 개도 안되었죠. 그 이유는 글을 게시하기 전에 무려 7단계나 되는 복잡한 승인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코비츠는 생어에게 위키와 같은 방식으로 누피디어를 운영하도록 권했고, 생어와 웨일스는 누피디어와 별개로 소규모 파생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01년 1월 중순경에 자체 도메인을 획득했고, 생어는 이를 ‘위키피디아’로 칭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누피디어와는 달리, 위키피디아는 개방형 모델을 적용하여 동료의 평가 없이 누구나 자발적으로 항목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생어는 누피디어 참여자들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이런 체계를 가리켜 “더없이 개방적이고, 공개 편집이 가능한 웹페이지들입니다. 제가 보기에 위키는 눈 깜짝할 사이에 구현되고, 유지보수가 거의 필요하지 않으며, 대체로 위험성도 아주 낮을 것입니다. 또한 위키는 유용한 콘텐츠 공급원으로의 잠재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제가 아는 한 단점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l 래리 생어는 위키피디아 탄생에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2002년 위키피디아를 떠납니다. 나중에 그는 또 다른 위키인 “시티즌디움(Citizendium)”을 만들어 2007년 3월에 공개했습니다. (출처: https://goo.gl/C9V59N)

생어의 말은 나중에 예언처럼 들어맞았습니다. 위키피디아 초기의 글은 여성 테니스 선수 명단에서부터 철학자 윌리엄 앨스톤(William Alston)의 생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지만, 상당수가 보미스 사의 직원들이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 여름에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글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9월 위키피디아의 글 수는 10,000개에 도달했고, 이듬해인 2002년 8월에는 40,000개에 이르렀습니다.

현재까지 백만 개를 돌파한 위키피디아로는 베트남판(2014년), 폴란드판(2013년), 네덜란드판(2011년), 독일판(2009년)이 있는데요. 웨일스와 생어는 처음부터 위키피디아 영어판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의 예상대로 영어판이 나온 지 불과 6주 만에 독일판 위키피디아의 하위 도메인이 만들어졌고, 이후 2년 동안 수많은 언어의 위키피디아 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판 위키피디아는 2002년 10월에 시작되었고, 위키 소프트웨어가 한글을 표시하는 데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하여 2015년에는 32만개가 넘는 항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2016년,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따르면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글은 3천 8백만 개를 돌파했으며 작성된 언어는 250개가 넘습니다.

2016년 5월 기준으로 5,157,000개의 글을 보유한 영어판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모든 언어의 위키피디아를 아우르면 그 중 영어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합니다.

l WIKIPEDIA (출처: https://goo.gl/nOlOex)

2003년, 닷컴(dot com) 붕괴로 인해 보미스 사의 자금 지원이 끊기자, 지미 웨일스는 위키미디어 재단(Wikimedia Foundation, WMF)을 설립하여 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서버와 소프트웨어를 유지하고 위키피디아의 경이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2004년까지 위키피디아는 단일 서버로 운영되었지만, 그 후 서버의 수가 점차 늘어 지금은 미국의 플로리다 주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시에 있는 서버의 수가 400개 직전까지 도달했습니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International Business Times)>에 따르면, 위키피디아 서버의 운영 비용은 매주 미화 38,000달러가 넘습니다. 여기에 각종 경상비와 거의 300명에 달하는 법무, 기술, 통신 담당 직원의 임금도 더해야 할 것입니다.

위키피디아가 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웨일스는 일반 구독 모델에 따른 프리미엄 콘텐츠 유료화, 그리고 가장 자주 거론되곤 하는 위키피디아 홈페이지의 배너 광고와 같은 다양한 옵션을 통해 웹사이트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압박을 여러 번 받아 왔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웹사이트 중 하나인 위키피디아에 그러한 광고를 하게 되면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키피디아는 페이지뷰가 매달 150억 건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비영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올해 15주년을 맞는 위키피디아는 민간 기부와 연간 모금활동에 힘입어 양호한 재무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관리 기관인 위키피디아 미디어 재단(Wikipedia Media Foundation)은 2014-15 회계연도에 미화 75,797,223달러의 수익을 기록했고, 2014년 12월 3일에는 단 하루 만에 미화 2,526,603달러에 달하는 기부금을 모았습니다.

l “2016년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지와의 인터뷰에서 위키피디아를 영리성 기업으로 전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웨일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내 인생은 즐거움이 넘치고 있어요. 온갖 유형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할 수 있죠. 공무원들에게 다가가 제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을 비롯하여 숱한 활동을 하고 있고, 이들은 하나같이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저는 사실 돈 버는 일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요.” (출처: https://goo.gl/br8b8r)

[‘A Smart, Creative World: Past and Future’ 연재 현황]

(1) 컴퓨터의 탄생, 시대를 앞서간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http://blog.lgcns.com/950

(2)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http://blog.lgcns.com/982

(3) ENIAC: 세계 최초의 빠른 컴퓨터
http://blog.lgcns.com/1001

(4)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http://blog.lgcns.com/1021

(5) 초기 컴퓨터의 진화
http://blog.lgcns.com/1042

(6) 컴퓨팅의 미래를 보여준 더글러스 엥겔바트
http://blog.lgcns.com/1060

(7) 웹의 발명: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http://blog.lgcns.com/1165

(8) 인터넷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1

(9) 위키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5

(10) 로봇의 발전
http://blog.lgcns.com/1182

글 ㅣ클라이브 기포드 (Clive Gifford)

  • 관련 자료

<위키 방식(The Wiki Way)> – Bo Leuf & Ward Cunningham, Addison Wesley, 2001

: 위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법을 다룬 최초의 가이드이며, 위키를 발명한 하워드 커닝햄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세계와 위키피디아 – 우리가 진실을 편집하는 법(The World and Wikipedia: How We are Editing Reality)> – Andrew Dalby, Siduri Books, 2009.

: 위키피디아의 편집자 겸 관리자가 위키피디아처럼 대중에게 공개되고 대중이 편집하는 지식 기반 사이트의 장점과 문제점을 비평적인 시각으로 다룬 책입니다.

첫 번째 위키의 위치: http://c2.com/cgi/wiki?WikiWikiWeb

위키피디아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가 위키피디아 설립에 대해 유익한 정보를 들려주는 TED 강연: https://www.ted.com/talks/jimmy_wales_on_the_birth_of_wikipedia?language=en

지미 웨일스가 <와이어드(Wired)> 지와 한 인터뷰: http://www.wired.com/2013/03/jimmy-wales-wikipedia/

챗봇과 대화를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