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BCI(Brain-Computer Interface)는 미래의 인터페이스로 주목받았습니다. 머릿속 생각만으로 각종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기술은 아주 먼 미래의 일처럼 여겨졌으나 최근의 연구 성과는 BCI 기술이 더 이상 미래의 인터페이스가 아닌, 현실화될 수 있는 기술임을 시사합니다.
물론 BCI 기술과 관련해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난제들이 많습니다. 특히 뇌 속에 임플란트 형식으로 전극을 삽입하거나 두피 부분에 전극을 붙이는 방식은 여전히 번거롭고,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과정입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BCI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최근의 연구 성과는 BCI 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BCI 기술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에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진은 기존의 방법보다 2배 정도 빨리 타이핑을 할 수 있는 BCI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과학전문 저널인 ‘네이처(2021년 5월 12일자)’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척추 장애로 수십년간 거동이 힘들었던 65세 노인의 운동피질에 마이크로 전극들을 삽입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타이핑할 수 있는 혁신적인 딥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했습니다.
이번 연구에는 ‘순환 신경망(RNN)’이라고 불리는 딥러닝 알고리즘이 활용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신경망을 학습시키기 위해선 방대한 양의 음성 데이터와 이미지가 필요한데요. 연구팀은 100~500개 정도의 문장을 단어로 분리해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문장을 만들어내고, 이 문장을 활용해 딥러닝 알고리즘을 학습시켰다고 합니다. 이 알고리즘을 65세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적용한 결과, 분당 18개 단어(90 개 글자)를 타이핑하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참고로 기존 BCI 기술로는 분당 8개 단어(40개 글자)를 타이핑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개발된 시스템을 활용하면 장애를 입은 사람도 일반인의 절반 정도 속도로 타이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래에는 뇌졸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타이핑하는 게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피츠버그대 연구진의 최근 연구 성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로봇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BCI 기술을 로봇팔이나 로봇핸드에 적용해 생각만으로 물체를 잡을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해왔습니다.
사람들은 과일, 연필, 컵, 공, 돌 등 다양한 물체를 잡을 때 시각뿐만 아니라 손의 촉각을 사용합니다. 시각적으로 물체의 형태를 파악하고 동시에 촉각을 이용해 물체를 어느 정도의 세기로 잡아야 할지 판단합니다. 그간 BCI 기술은 뇌신호를 전자장치에 일방적으로 전송했는데요. 피츠버그대 연구진은 촉각 신호를 뇌쪽으로 전송하는 기술을 구현했습니다.
피츠버그대 연구진은 교통사고로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나탄 코플랜드와 함께 지난 2016년부터 BCI 기술 기반의 로봇의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나탄 코플랜드의 뇌 운동피질에 전극을 꼽아 뇌 신호를 로봇의수에 보내고 역으로 로봇핸드가 물체를 잡는 순간의 촉감을 다시 뇌쪽으로 전달하는 실험입니다. 이를 위해 운동 피질뿐 아니라 감각피질에도 전극을 삽입했습니다. 물체를 만질 때 느껴지는 촉감을 뇌에 전송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최근 피츠버그대 연구진은 이번 연구 성과를 과학전문 저널인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생각만으로 다양한 물체를 잡고 촉감까지 인지할 수 있는 로봇의수가 실용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미 FDA는 재활장치 전문기업 뉴롤루션스가 만든 BCI 기반의 재활기기 ‘입시핸드(IpsiHand)’에 대해 처음으로 드 노보(De Novo) 승인을 내주었습니다. 드 노보는 새로운 기기에 대한 FDA의 승인 절차 가운데 하나인데요. 입시핸드(IpsiHand)는 뇌졸중 환자의 머리에 비칩습적 EEG(non-invasive electroencephalography) 전극을 머리에 부착하고, 뇌의 활동을 기록해 무선으로 태블릿과 로봇핸드에 전송할 수 있습니다. 환자는 이 핸드를 이용해 물체를 잡는 재활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사고로 팔이나 손을 잃은 사람들이 생각만으로 로봇의수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BCI 기술은 가전 제품이나 컨슈머 기기들에도 적용될 예정입니다. 생각만으로 가전제품을 조작하는 게 가능해지는 건데요. 최근 BCI 기술을 활용해 뇌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미 보스턴에 위치한 신경과학분야 전문기업인 뉴러블은 BCI를 지원하는 헤드폰인 ‘엔텐(Enten)’을 개발하고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를 통해 성공적으로 론칭했습니다. 이 제품은 EEG 센서가 생산성이 높은 뇌파의 패턴을 분석해 사람들이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시간 관리를 제안하고, 뇌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적절한 휴식을 권유합니다. 자신의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뇌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음악이 무엇인지도 알려준다고 합니다.
뉴러블은 스페인 가상현실(VR) 그래픽 업체 이스튜디오퓨처와 협력해 지난 2017년 세계 처음으로 BCI 기반 VR 게임인 ‘더 어웨이크닝’을 개발하고 ‘시그래프 2017’ 전시회에 출품해 주목받았습니다. 이 기술을 채택한 헤드마운트를 착용하면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게임 컨트롤러 없이 생각만으로 가상 세계의 캐릭터와 싸움을 벌일 수 있습니다. 뉴러블은 이 가상게임의 아케이드 버전 계획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뉴러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는 메타버스와 BCI 기술의 접목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BCI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선 피실험자의 뇌 신호를 전극으로 읽어 유선으로 외부 컴퓨터 장치에 전송해야 합니다. 최근 개발된 ‘무선(wireless)’ BCI 기술은 외부 컴퓨터 장치와 유선으로 연결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혁신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BCI 연구조직인 ‘브레인게이트(BrainGate)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고 있는 브라운대학의 연구팀은 최근 2명의 사지마비 환자의 머리에 무선 송신기를 설치하고 케이블 없이 뇌신호를 전송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의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IEEE 의생명공학처리기술’에 연구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은 무선 BCI 기술을 활용해 컴퓨터 화면의 윈도우 시작 메뉴를 조작하고, 유튜브·판도라 등 서비스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컴퓨터에 글씨를 입력하는 것도 성공했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BCI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타트업 마인드엑스(MindX)는 스마트 글래스를 착용하고 뇌에서 바로 증강현실(AR) 등 디지털 세계로 접속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기업인 넥스트마인드(NextMind)는 지난 ‘CES 2020’에서 사람 뇌의 시각피질에서 바로 디지털 명령어를 가져올 수 있는 비침습적 BCI 기술과 개발자 키트를 선보였습니다.
페이스북이 인수해 주목을 받고 있는 콘트롤-랩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 그리고 뉴로시티(Nerosity), 커널(Kernel), 할로 뉴로사이언스, 싱크론, 마인드메이즈 등의 기업 역시 BCI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특히 뉴럴링크는 페이저(pager)라는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삽입해 퐁(pong)이라는 게임을 하는 실험을 진행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뇌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BCI 열풍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BCI 기술이 사고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사지마비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일각에선 뇌 해킹 등과 같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비단 BCI기술뿐 아니라 모든 첨단 기술에는 명암이 있습니다. BCI 분야에서 축적한 지식과 경험들이 인류의 보편적인 행복 증진에 기여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기술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함께 수반돼야 할 것입니다.
글 ㅣ 장길수 ㅣ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