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에게 10달러 보내줘!”
말 한마디로 송금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송금은 소비자가 은행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보통 은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송금을 하려면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상대방 계좌번호와 금액을 누른 뒤 일회용 암호(OTP)를 입력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그러다 간편 송금 서비스 전용 앱 업체와 인터넷전문은행 등 전자 금융 업체가 간편 송금 시장에 뛰어들면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2015년 3월 전자금융거래법에서 금융기관이 공인인증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사라지면서부터 간편 송금에 다양한 IT 기술이 접목되기 시작했습니다.
간편 송금 서비스의 확대와 진화
금융권과 간편 송금 앱 업체들은 지문이나 홍채 등 생체 인식부터 채팅창 등을 통한 다양한 인증 수단을 도입하는 한편 자체 개발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한층 진화한 간편 송금 서비스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간편한 송금 방식으로는 ‘음성 뱅킹’이 꼽힙니다. 음성으로 계좌를 조회하고 송금뿐 아니라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음성 뱅킹에 대한 관심이 커진 계기는 인공지능(AI) 스피커의 대중화가 한몫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AI 스피커는 유용하고 가끔 재미있는 ’비서‘와 같습니다. 음성 스피커를 만들어 데이터 센터의 컴퓨터와 연결하는 거대 IT 기업들에게 AI 스피커는 작지만 매우 효율적인 데이터 수집처가 됩니다.
미 시장조사업체 컨슈머 인텔리전스 리서치 파트너스에 따르면, AI 스피커 사용자의 대략 60%는 온도 조절 장치, 보안 시스템 혹은 가전제품 같은 가정 기기 중 최소한 한 개를 음성 스피커와 연결하고 있습니다. 음성 인식 스피커는 사용자의 일상생활에 관한 사실을 끝없이 기록하는 셈입니다.
AI 스피커를 출시한 거대 IT 기업 아마존과 구글, 애플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수록,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이러한 정보들은 특히 개인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적합합니다.
디지털 상호 작용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음성 기술
음성 기술은 현재 디지털 상호 작용에서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식당으로 가는 길을 찾거나 전화를 거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을 위해 기기에 말하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AI 스피커와 같은 음성 서비스를 사용해 전화를 받고, 인터넷·모바일 뱅킹에 로그인하지 않고도 계정 잔액을 확인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아마존의 AI 플랫폼 ‘알렉사(Alexa)’는 음성 뱅킹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캐피털원(Capital One)’ 은행은 알렉사를 이용, 고객이 잔액을 확인하고 지출 내역을 확인, 청구서를 지불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령 고객이 “알렉사, 내가 지난주에 얼마를 썼어?”라고 물으면 “신용카드로 90달러 25센트 썼어요”라고 대답하는 식입니다.
AI 스피커인 아마존 에코(Amazon Echo), 아마존 탭(Amazon Tap), 에코 닷(Echo Dot) 및 아마존 파이어(Amazon Fire)와 같은 알렉사 지원 장치를 사용하는 은행 고객은 스타벅스, 미국 유기농 마켓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 등 2,000여 유명 가맹점에서 쓴 지출 내역을 음성으로 간편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JP 모건(JP Morgan)은 투자은행의 기관 고객이 스피커를 통해 회사의 분석 보고서와 주식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아마존,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알렉사, 시장 분석과 해설을 해줘”라고 말하면 스피커가 수행하는 식입니다. US 뱅크는 알렉사를 통해 계좌 확인뿐 아니라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구글은 자사의 송금 서비스 ‘구글 페이’와 AI 플랫폼 ‘구글 어시스턴트’를 연동했습니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구글 페이를 통한 개인 간(P2P) 송금 음성 명령 기능을 지원합니다.
아이폰,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오케이 구글, 조지에게 5달러 보내줘.”라고 음성 명령을 하면 자동으로 송금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송금인과 수취인이 모두 구글 페이를 설정해 놓아야 합니다. 구글 페이가 설정돼 있지 않을 경우 송금 요청을 하면 구 페이를 설정하도록 안내받게 됩니다. 지문 인식이나 구글 암호를 갖고 있다면 손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 기능은 미국에서만 사용 가능하며 향후 구글은 다른 국가에도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AI 스피커 ‘구글 홈’을 통한 송금 기능은 곧 탑재될 예정입니다.
사실 음성을 통한 뱅킹은 애플이 앞서 시작했습니다. 애플은 AI 플랫폼 ‘시리(Siri)’를 이용한 송금 서비스를 자사의 결제 플랫폼 ‘애플 페이’ 외에 스퀘어 캐시(Square Cash), 벤모(Venmo)를 지원합니다. 애플은 2016년부터 시리를 이용한 송금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국내 AI 스피커를 통한 뱅킹 서비스
국내도 AI 스피커를 통한 뱅킹 서비스 일상화를 위해 노력 중입니다.
KT는 AI 스피커 ‘기가 지니’를 통해 잔액 조회와 송금을 할 수 있습니다. 케이뱅크 송금 서비스는 ‘지니야, 엄마에게 5만 원 송금해줘.’라고 말하면 스마트폰으로 푸시(PUSH) 메시지가 발송되고 푸시 메시지 선택 시 실행되는 케이뱅크 앱에서 인증에 성공하면 송금이 완료되는 방식입니다.
다만 AI 스피커로 송금이라고 해도 한 번은 스마트폰을 거쳐야 합니다. 목소리 인증만으로 금융거래까지 할 수 있는 ‘화자인증’ 기능을 적용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목소리만으로 AI 스피커를 통해 금융 거래를 하기 위해선 ‘화자 인식’과 ‘화자 인증’ 두 기술이 필요합니다.
화자 인식은 목소리만으로 이 사람이 ‘A 인지 B 인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화자 인증은 ‘A가 김 아무개인지, B가 최 아무개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화자 인증은 보안 측면에서 아직 더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판단입니다.
위•변조가 쉽다는 것은 음성 뱅킹의 한계입니다. 목소리는 위•변조가 쉽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지문, 홍채 등 생체 인증보다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음성 뱅킹의 오류율도 아직은 높은 편입니다. 스마트 스피커 등을 개발하는 회사를 조사한 결과 개발 회사 중 88%는 6% 이상의 음성 오류율이 있었으며, 회사 중 35%는 20% 이상의 오류가 발생한다는 조사 보고서도 나온 바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AI 스피커 등으로 금융거래 수행 방식과 은행 업무 처리 방식은 이미 바뀌고 있습니다. 음성 뱅킹 보안 문제는 초기에 다른 인증 방식과 병행하는 방법을 택하면서 정확도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AI 스피커 기반 음성 뱅킹으로 금융 회사, IT 기업은 앞으로 더욱 개인적인 방식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AI 스피커를 통해 별도 인증 절차 없이 음성만으로 결제, 송금, 계좌조회 등이 가능해진다면 기존 금융거래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말 한마디로 거래가 이뤄지는 이른바 ‘카우치 뱅킹’이 머지않아 보입니다.
글 l 김지혜 l 전자신문 금융 IT 전문기자 (저서: 로보 파이낸스가 만드는 미래 금융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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