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미디어 업체 ‘아이하트라디오(iHeartRadio)’가 실시한 직원 해고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하트라디오는 미국 전역에 8백50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거느리고 있고, 청취자 수가 무려 2억 7천만 명에 달할 만큼 큰 방송사입니다.
요즘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 라디오가 퇴물 취급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아이하트라디오는 음악 또는 토크쇼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전히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특별한’ 미디어입니다.
라디오 방송 업체들은 유명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구입한 뒤 미국 전역의 청취자에게 방송을 보냅니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 도중 보수 성향의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에게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의 적극 지지자인 러시 림보는 직접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아이하트라디오는 최근 디지털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팟캐스트, 스마트폰 앱 등에 투자해 젊은 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 회사가 지난 1월 미국 전역에서 수백 명의 감원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론 이 규모가 1천 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감원 대상에는 많은 라디오 디제이가 포함됐습니다. 회사 측은 감원 발표 때 “기술과 인공지능(AI)에 투자하기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 밥 피트먼은 “감원은 회사를 현대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12만 명이 넘는 직원 중 감원 대상자는 일부라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회사 측은 방송 일정을 조정하고, 이용자 선호를 조사하고, 노래를 골라서 들려주기 위해 AI 센터를 지역별로 설치해 운용키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의 구조조정에 대해 안팎으로 곱지 않은 시선이 많습니다. 우선 지역 방송국 직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구조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오하이오주의 한 음악 방송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한 직원은 “회사 고위층이 내 가슴을 찢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지역 공동체에서 청취자들과 맺어 온 관계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고 통지를 받는 직원들 사이에서 회사 고위층이 경영상의 실책과 무능을 감추기 위해 AI와 테크놀로지를 구실로 삼고 있다는 불만도 비등하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디어 기업의 경영진들이 자신들이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갖고 있다고 홍보하고, 대중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방편으로 AI를 감원의 이유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뉴욕대학의 음악 비즈니스 교수인 델 콜리아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감원은 사양 산업에서 위기가 증폭되자 AI 투자의 중요성을 핑계로 삼는 전형적 사례입니다. 어찌 보면 AI가 누명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을 해고하는 데 AI가 악역을 맡은 셈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AI가 누명을 썼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이하트라디오의 감원 태풍은 기술의 진보에 따라 자동화와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하는 현상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 디제이 대신 AI가 디제이 역할을 맡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는 것이죠.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친근한 목소리 대신 AI가 소비자의 음악 소비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음악을 들려주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즉,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현상이, 미디어 이용자와의 친밀한 소통이 요구되는 미디어 직종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죠.
사실 AI가 미디어 산업의 일자를 빼앗는 추세는 라디오 산업만의 일은 아닙니다. 워싱턴포스트 등 대형 언론사들이 로봇 기자를 동원해 뉴스 기사를 쏟아내는 게 더는 뉴스가 아닙니다. 예컨대 미국 통신사 AP의 경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주가 변동, 대학 스포츠 경기 결과 등을 수합해 기사를 쓰도록 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으로 많은 나라의 신문 산업이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2001년 이후 신문 종사자의 절반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지난 2월엔 마이애미 헤럴드, 캔자스시티 스타 등을 거느린 미국의 신문 재벌 매클라치가 파산 보호 신청을 했습니다.
법원이 이를 허가하면 이 회사의 자산이 뉴저지주에 기반을 둔 헷지펀드 회사로 넘어가게 됩니다. 한때 이 회사의 주가가 7백 달러가 넘었는데, 최근에 1달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AI 확산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디어 소비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내 보도에 따르면,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는 얼마 전부터 직원들 대신 AI가 뉴스 편집을 맡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존에 뉴스 편집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들은 다른 업무로 전환되거나, AI를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아이하트라디오의 감원 사례를 AI와 로봇으로 인해 향후 미디어 관련 일자리가 대폭 사라지는 신호탄으로 해석해선 곤란합니다. 아마존이 주도한 전자상거래 때문에 수많은 소매점이 문을 닫아야 했고,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2014년 이후로 미국에서는 1천2백만 개의 일자리가 늘었습니다.
온라인 구매가 폭등하면서 미국에서는 물건 배달 운전자가 11만 8천 명이 늘었습니다. 물론 아마존이 이들 운전자의 상당수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직원 수도 급증했습니다. 일자리가 줄지 않고 업무가 대폭으로 재배치된 셈이죠.
더불어 근로자가 스스로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 일하는 게 가능한 소위 ‘기그 경제(Gig Economy)’가 확산된 덕분에 경제가 보다 활력을 갖게 됐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공유 경제(Sharing Economy)의 확산으로 기존의 택시 산업이 어려움에 처했지만, 우버(Uber) 또는 리프트(Lyft) 운전자가 대거 등장했고, 소비자들도 공유 서비스를 편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AI가 많은 일자리를 빼앗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또 다른 기회가 창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 AI는 일자리 측면에서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그렇다고 AI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나아가 미래세대의 삶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불식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던 저널리스트, 라디오 디제이는 물론이고, 변호사, 은행원, 주식 중개인, 시장 분석가, 스포츠 심판, 방사선 전문의, 비행기 조종사 등 수많은 직업이 이미 AI 로봇 때문에 입지가 줄고 있거나, 멀지 않은 장래에 퇴출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매켄지는 20여 년 내에 미국 노동자 중 3분의 1이 직업을 바꿔야 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우리에게 기술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의 경우 기계가 인간의 삶과 행복을 파괴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촉발됐습니다. 당시 직물공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착취에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계를 파괴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이 당시 기술 혁신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본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예컨대 자동차 산업의 경우 공장 자동화로 인해 수많은 직업이 창출되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많은 수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I는 산업화와 성격이 다르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미래학자 마틴 포드에 따르면, 산업화 시대와 AI 시대 간에 가장 큰 차이점은, 산업화 시대에선 새로운 기계가 낡은 기계를 대체했지만, AI 시대에는 기계(로봇 또는 소프트웨어)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AI가 계속 사람을 쫓아가 다른 영역 또는 산업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죠.
마틴 포드는 향후 AI로 인해 가장 위협을 받게 될 직업은 반복적이고(Repetitive), 예측 가능한(Predictable)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라고 진단했습니다. 예컨대 기자나 통계 분석가의 경우에도 그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면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마틴은 향후 창조적 사고(Creative Thinking)를 하는 직업군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합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뛰어난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대표적으로 심리치료사, 헬스 코치, 음식점 직원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손으로 일하는 사람, 배관공 등도 상당 기간 AI의 태풍에서 벗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AI가 일자리 킬러(Killer)가 되고 있고, 앞으로 그 흐름이 가속화될 수 있다면 사회의 각 부분에서 이에 대응하고, 상생할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AI, 일자리 킬러가 아닌 함께 상생할 방안
첫째, 기술 비관론에서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기술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결정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그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지는 결국 우리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 제도, 법, 의식을 재정비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기그 경제가 확산하면서 많은 노동자가 기존에 정규직 직장에서 받았던 혜택들, 예컨대 연금, 건강보험, 안정적 수익 등을 보장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배달원이나 공유 차량 운전자 등 기그 경제 노동자들의 삶이 다소 불안정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눈앞에 닥친 AI 시대에서는 국가정책과 노동 관련 법들을 제대로 정비하고,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국 브루킹스 재단의 거버넌스 연구 책임자 다렐 웨스트는 “지금이야말로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사회적 계약을 재점검하고, AI 시대에서 어떻게 국가적, 사회적 혜택을 시민들에게 제공할지를 고민하고, 바람직한 해답을 제시할 때”라고 지적했습니다.
둘째, AI의 확산과 함께 ‘노동’이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습니다. 로봇과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함에 따라 노동자들이 더욱더 많은 여가를 갖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개인이 창의적, 문화적 활동을 할 시간과 여유가 많아진 것이죠.
AI 덕분에 우리 모두 가족 및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기술 진보로 인해 인간 삶의 질이 보다 실질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셋째, AI를 피할 수 없다면 그 AI를 혁신의 발판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뉴스 산업과 저널리즘에서도 AI가 혁신의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언론사가 뉴스를 모으고, 생산하고, 전달하는 데 AI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뉴스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뉴스가 없다면,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와 정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AI 시대에도 미디어 산업 종사자가 진실하고, 좋은 정보를 재빨리 전달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AI 기술은 저널리즘의 활력을 키워가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AI는 거짓 정보를 잡아내는 데도 활용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AI의 협업 체제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넷째, 아이하트라디오의 경우처럼 미디어 기업과 저널리즘 산업이 디지털 혁명의 파고 속에서 위기에 직면했다면 상생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미디어 기업들이 파산과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틈을 타 가짜 뉴스, 혐오 표현, 선정적 뉴스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디어와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주춧돌입니다. 건강한 미디어, 진실된 뉴스가 없다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 또한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공적 자원을 투입해 미디어와 저널리즘을 구하는 방안을 마다해선 안 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아넨버그 커뮤니케이션 스쿨의 빅터 피카드 교수는 최근 영국 가디언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공적 미디어를 구축하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 타협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가 직접 이들 미디어를 지원하는 데 반대하는 것은 사안을 이념의 잣대로 보기 때문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처럼 성공 사례가 많다는 것입니다. 언론은 입법, 행정, 사법 3부에 더해 4부라고 물릴 만큼 그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 4부가 무너진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AI가 파죽지세로 미디어 시장뿐만 사회 각 부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친구, 가족들의 일자리는 물론이고 민주주의의 기반인 미디어 시스템에도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AI를 혁신과 연대의 발판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인간과 기술 간의 협업뿐만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 개인과 기업, 기업과 기업이 서로 상생의 방안을 찾고 공동의 노력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글 l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angelha7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