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중소기업이 금융 시장에서 사업을 펼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돈이 오가는 사업이 많다 보니 여러 규제를 받아야 하고, 사업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사업화를 할 수 있는 자금이나 인력이 부족한 작은 스타트업은 더욱이 애를 먹습니다.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금융규제 샌드박스(Sandbox)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벌써 시행 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샌드박스’란 단어는 플라스틱 공간에 모래를 담아 아이들이 놀 수 있게 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게임의 한 장르로도 불리는데, 개발자 등이 개발한 게임 안에서 전체 맵 등을 파괴할 수도 있고 새로 제작할 수도 있습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엄격한 금융 규제 환경을 한시적으로 풀어, 혁신 아이디어와 기술이 시장에서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입니다. 시행 2년 만에 108건에 달하는 혁신금융서비스가 시장에서 빛을 보게 됐습니다.
핀테크 스타트업 성장 마중물 ‘샌드박스’
금융위원회는 2019년 4월 1일부터 금융산업 혁신을 촉진하고 소비자 편익을 증진하기 위해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출범했습니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최대 4년간 각종 인가나 영업행위 관련 규제 적용을 유예, 면제받게 됩니다. 혁신 아이디어와 기술만 보유하고 있으면 사업화를 조속히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금융혁신특별법을 개정해 혁신금융사업자가 규제개선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부가 규제개선을 결정하면 특례기간을 1년 6개월 추가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총 139건의 혁신금융서비스가 지정을 받아 이중 78건이 시장에 출시돼 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누적기준으로는 총 108건의 서비스가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금융규제 샌드박스 외에도 전 산업분야에 걸쳐 샌드박스 제도는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정된 서비스 건수만 산업부 116건, 과기부 90건, 중기부 65건, 국토부 23건에 달합니다. 금융위원회 등은 혁신금융서비스를 보다 확산하기 위해 ‘찾아가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미있는 혁신금융 서비스
금융혁신서비스로 지정된 사업을 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사례가 상당합니다. 대표적인 서비스를 몇 가지 살펴보면, 우선 소수점 주식 투자가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 등의 주식은 1주를 사더라도 수십만 원을 호가합니다. 사회초년생이나 뭉칫돈이 없으면 주식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이에 정부는 소수단위(0.05주 등)로도 주식을 살 수 있는 소수점 주식투자서비스를 지정했습니다. 신한금융투자와 한국투자증권이 이미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밖에 신분증 없이 은행 등을 방문해 금융서비스를 받는 간편 실명 확인서비스, 신용카드나 휴대폰 없이도 기계에 얼굴을 인식해 결제할 수 있는 안면인식 서비스도 눈에 뜁니다. 얼굴만 인식하면 편의점이나 상점에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 미래형 기술은 신한카드가 LG CNS의 기술력을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LG CNS가 3D, 적외선 카메라로 추출한 디지털 얼굴 정보를 신한카드의 가상카드 정보인 토큰과 연동해 결제를 승인하는 방식입니다. 업계 대표 혁신 서비스로도 불립니다.
그 외에도 해외 출장이 잦은 소비자가 최초 보험 한 번만 가입하면 이후 보험 가입은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는 온오프 보험 간편 서비스도 등장했습니다. 57개의 핀테크 기업이 혁신금융 서비스를 통해 송금과 결제, 인증, 인슈어테크, 자본시장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합니다.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젊고 유능한 인재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됐습니다. 또한 현재 혁신금융서비스 추진을 위해 약 562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혁신금융서비스 출시로 소기 성과를 달성하면 신규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성장 모멘텀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 받은 29개 핀테크 스타트업이 6000억 원에 가까운 투자유치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중 10개 기업은 미국과 영국, 베트남 등 10개국으로 해외 사업을 모색 중입니다. 전통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 간 협업 사업도 빠르게 진행됩니다. 은행 등 금융사가 금융기술연구소를 설립, 핀테크 기업과 신기술을 콜라보한 융합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뱅크 등은 곧 사업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규제 샌드박스, 포용금융으로 육성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디지털 전환과 포용금융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인공지능(AI), 빅데티어, 블록체인 등 혁신적인 신기술을 활용해 금융산업뿐만 아니라 여러 미래산업에 디지털을 입히는 작업을 하겠다는 것인데요. 이미 시장에서는 이 같은 미래 신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혁신을 추진 중입니다.
인공지능을 통해 기업이 보유한 특허 등을 가치평가해 금융기관이나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출현했습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부동산 투자 서비스도 확산 일로입니다. 거래 내력을 분산원장에 기록해 신뢰성을 높인 부동산 유료화 유통 플랫폼이 첫 선을 보였습니다. 개인신용정보를 안전하게 분석하는 동형암호 기반 데이터 결합 서비스로 최근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기업의 사업 동반 성장뿐만 아니라 포용금융의 파이프라인으로 기능과 역할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정부는 지정된 서비스가 원활하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사후컨설팅과 테스트베드 비용도 지원합니다. 초기 핀테크 스타트업이 혁신적 아이디어 사업성과 실현 가능성을 미리 실험할 수 있는 환경 구축에도 나섰습니다.
일각에서는 금융 샌드박스가 활성화되면서 유사 서비스 중복 신청이 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합니다. 사업화 내용이 공개돼 다른 사업자가 카피캣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업계는 이 참에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일시적 유예 제도로 한정할 게 아니라 범정부 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법적 제도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습니다. 아예 특별법 형태로 특별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글ㅣ 길재식ㅣ전자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