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출시된 시뮬레이션 게임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는 플레이어가 신이 되어서 영토를 확장하는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하늘에서 전체 영토를 내려다보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적절히 상호 작용해야 하죠.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를 내려다보리라는 상상을 구현한 게임이었고, 피조물과의 여러 상호 작용이 필요했기에 게임 인공지능(AI) 설계에 구글 딥마인드 CEO이자 알파고의 핵심 개발자인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가 참여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긴 세월 하늘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구글의 구글 어스(Google Earth)와 같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위성 사진 서비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존에는 항공 데이터를 보는 것 외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려웠죠. 또한, 항공 데이터로 얻은 결과물과 상호 작용할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위성 사진의 경우 높은 해상도로 이미지 프로세싱이 오래 걸리고, 막상 촬영하더라도 기상 상황에 따라서 보이지 않는 지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헬기 등 비행체를 이용한 방법이 있지만, 시간당 500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비용이 발생해서 넓은 지역을 정확하게 촬영하려면 큰 비용이 들었습니다.
결과물이 좋지 않다면 다시 촬영해야 했으니 지출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탓에 초고해상도 항공 사진은 분기별로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문제는 촬영 주기에 따라 빈 기간 변화한 항공 데이터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데이터의 분석에 오류를 제공하는 원인이었기에 항공 데이터를 즉각 분석해 상호 작용하는 건 불가능이었죠. 그래서 저렴하게 항공 데이터를 수집할 방법, 빠르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용적으로 상호 작용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드론,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 기술이 집약한 빅데이터 솔루션이 발전하면서 항공 데이터의 활용은 과거보다 수월해졌습니다.
드론은 저렴한 비용으로 지정한 지역을 주기적으로 촬영해 초고해상도 항공 사진을 제공합니다. 항공 사진은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서 처리되며, 인공지능이 분석해 가치가 있는 항공 데이터로 정제합니다. 정제한 데이터의 품질이 우수할수록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과 실질적으로 상호 작용할 방법이 뚜렷해질 것입니다.
항공 데이터, 어디에 활용할까?
그렇다면 항공 데이터는 어디에 활용할까요? 최근 주목을 받는 건 도시 계획, 군사, 임업 등 기존 활용 분야 중에서도 ‘농업’입니다. 항공 데이터를 활용한 다른 분야와 달리 농업은 민간이 주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호주 시드니 기반 스타트업 플로우샛(Flurosat)입니다. 이 회사는 농경의 생물학적 특성, 다양한 기상 조건, 농장 기록 등 복합적인 데이터를 처리해 농업인이 생산에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데이터 솔루션, 플로우센스(FluroSense)를 개발합니다.
호주만 아니라 미국, 우크라이나 등 지역에서 널리 쓰이고 있죠. 미국의 농지 면적은 약 9억 2,000만 에이커입니다. 한반도 면적의 약 17배 크기이며, 호주의 농지 면적은 2억 4,000만 에이커로 한반도 면적의 약 4배 입니다. 이만큼 넓은 농경지를 모두 사람이 관리한다는 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기존에도 항공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은 있었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간단한 것도, 그렇다고 접근성이 뛰어난 방법도 아니었습니다. 또, 데이터를 분석할 도구가 마땅하지 않아서 사람이 수동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남겨야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발한 것이 플로우센스입니다.
플로우센스는 클라우드 기반 농작물 관리 및 분석 플랫폼입니다. 전 세계 수십 개의 농작물에 대한 고급 원격 감지 시스템 및 분석 기능을 농민에게 제공하고, 농지 면적마다 다른 질소 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해 농민들이 적당한 비료를 적절한 장소에 사용해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죠.
초기 플로우센스는 적외선 위성 사진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정확한 정보에 관한 요구가 늘면서 더 복잡한 데이터의 필요성이 증가했고, 플로우샛은 2019년에 드론 기반 이미지 도구 업체인 미카센스(MicaSense)와 제휴합니다.
미카센스는 다중 스펙트럼 센서를 탑재한 카메라를 드론에 장착해 반사된 빛을 다섯 가지 스펙트럼 대역으로 포착, 작물의 감염 여부, 해충 침입, 영양 결핍 등 문제 발견을 도와줍니다. 예컨대, 스펙트럼 카메라의 특정 필터는 식물의 엽록소 함량 변화를 노출하는데, 질병이나 스트레스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수천 개의 이미지는 수 분 만에 처리되어 농경지 분석에 활용합니다. 농민은 비료를 주거나 살충제를 뿌리는 등 분석 산출물에 의한 지시만 따르면 됩니다.
플로우샛은 트래비언(TerrAvion)과도 제휴했습니다. 트래비언은 실시간 고해상도 항공 사진 스타트업입니다. 농업에 활용하는 것 중 최고 품질의 상업 고해상도 항공 사진을 제공하는데, 항공 사진만으로는 가치가 크지 않았습니다. 드론의 활용으로 저렴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 필터를 사용해 단기간에 여러 종류의 항공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역량만 있었죠.
하지만 플로우샛과 제휴하면서 항공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잡초와 피복작물, 토양 데이터와 작물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플로우센스의 알고리즘은 트래비안 데이터를 개별적으로 분석하고, 바이오매스와 엽록소 함량을 평가합니다. 이는 미카센스를 통해 수집한 항공 데이터와도 동기화하므로 스펙트럼 카메라와 연동하면 엽록소 함량을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항공 데이터를 가진 기업은 분석할 플랫폼을 찾고, 분석할 기술과 도구를 갖춘 기업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자 함께 시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농업에서의 항공 데이터 활용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요?
농업에서의 항공 데이터 활용 방안은?
핵심은 실시간입니다. 앞선 설명처럼 항공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촬영 방법과 이미지 센서, 스펙트럼 필터에 따라서 확보하는 데이터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수집과 분석을 반복한다면 농작물의 상태를 실시간에 가깝게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으며,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면 농업의 완전 자동화에 근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기반 스타트업 타라니스(Taranis)는 인공지능 기반 작물 이미지 분석 시스템에 드론을 활용합니다. 저공비행을 하는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서 해충 침입과 질병을 사전에 탐지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5년간 운영하면서 수백만 장의 고품질 농작물 영상을 수집했습니다.
질병에 걸린 작물, 해충이 든 작물, 잡초가 올라온 토지 등 여러 처지에 놓인 농작물 영상으로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뉴런 네트워크 기반 인공지능 추진 시스템으로 농작물을 감시합니다.
예를 들어, 드론이 촬영 중에 벌레가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심층 촬영해 벌레가 기어 다니는 모습이 보이도록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실제 벌레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죠. 이런 작업은 40만 평방미터를 완료하는 데에 불과 6분밖에 소요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크롭 테스트보다 20배 빠른 속도로 분석할 수 있는데, 드론이 촬영하면서 시스템은 분석을 함께 진행하므로 촬영이 마무리될 때는 이미 지정한 농경지를 전부 파악한 시점이 됩니다.
타라니스 공동 창립자이자 CEO 오피르 샬름(Ofir Schalm)은 ‘지난 세기에 걸쳐 농업에 대한 막대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1800년 대의 느리고 부정확한 농작물 위협 탐지 기술은 여전히 남아있다.’라면서 ‘우리 서비스는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농민에게 통찰력을 제공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회사가 실시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동화입니다. 드론이 농경지를 감시할 뿐만 아니라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비료나 농약을 뿌리는 등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죠. 현재도 드론은 농업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사의 진행 상황이나 농작물의 상태는 사람이 확인하고, 얼마큼의 비료나 농약을 살포할지 가능해야 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자동화입니다. 이를 항공 데이터와 긴밀하게 연결하면 어느 구역에 어느 정도의 비료와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지 인공지능이 판단하고, 사람은 모니터의 대시보드로 확인 후 결정만 내리면 자동화한 시스템에 의해서 드론이 작업할 수 있습니다.
자동화는 인력을 대체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도 있지만, 비용 절감이라는 효율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플로우샛은 항공 데이터로 농작물을 관리했을 때 기존보다 물 사용량을 최대 25%, 비료 사용량을 최대 30%까지 절약하고, 농업용 엔진은 10%에서 25%로 수율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줄어든 손실은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민의 업무 부담 해소와 토양 오염 방지, 줄어든 비료 사용으로 비료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까지 절감하는 환경적 이점도 얻을 수 있습니다. 샬름이 말한 것처럼 한 세기 전의 비효율적인 농업 시스템을 저렴한 고품질의 항공 데이터와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 기술로 몇 단계 앞선 혁신적인 모델로 교체하는 지점이 된 것입니다.
글 l 맥갤러리 l IT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