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의 혁명’의 저자이자 미래 기술•사회 변화 전문가인 돈 탭스콧(Don Tapscott)은 블록체인을 “향후 세계 경제 변화를 주도할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 기술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보다 인류에게 더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철옹성 같았던 금융기관들이 오늘날 전통적인 방법을 버리고 변화에 대한 열망과 함께 혁신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핀테크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으며, 그 해법의 정점에 가상화폐, 즉 블록체인이 있습니다.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스(Finance)와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니컬(Technical)의 조합인 핀테크 (FinTech)는 지금 글로벌 금융산업의 미래 판도를 바꿔놓을 혁신적인 트렌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핀테크를 통해 기존의 금융시장에서 활용되었던 전통적인 사업모델들이 파괴되고 혁신적인 사업모델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핀테크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금융입니다.
핀테크 서비스는 결제, 송금 등의 지급결제 영역과 예금, 대출영역 그리고 투자자문 등 여러 금융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급결제 및 예금, 대출영역 외에도 소비자들이 기업에 직접 투자하고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의 서비스와 자산관리 등 다양한 영역으로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액은 2008년의 9.3억 달러에서 2013년에는 29.7억 달러로 규모가 3배 이상 증가하였는데요. 주로 미국과 유럽 지역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서도 투자액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16년까지 누적 투자액이 1000억 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핀테크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앞으로 핀테크가 금융권과 기업들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인지 상상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다음에서는 핀테크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이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된 배경을 알아보고 블록체인이 가져올 금융의 파괴적 혁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록체인,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만들다
금융혁신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것이 블록체인입니다. 블록체인 1.0이라고 불리는 초기 블록체인의 용도는 전자화폐 한 가지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사용자는 이미 구현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퍼블릭 체인만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만든 가상화폐 이더리움(Ethereum)이나 미국이 만든 리플(Ripple) 등으로 대변될 수 있는 블록체인 2.0으로 발전하면서, 전자화폐로서의 가치 외에 다양한 용도의 블록체인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블록에 담을 수 있었던 한정된 정보량을 확장할 뿐 아니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블록의 조건을 프로그래밍 할 수 있도록 개선했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개발자입니다. 그는 2008년 10월, 암호화 기술 커뮤니티 메인에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을 올렸습니다. 여기서 그는 비트코인을 ‘전적으로 거래 당사자 사이에서만 오가는 전자화폐’라고 소개하고 “P2P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중지불을 막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P2P 네트워크를 통해 이중지불을 막는데 쓰이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신용이 아니라 시스템에 기반한 네트워크를 구성한 덕에 제3자가 거래를 보증하지 않아도 거래 당사자끼리 가치를 교환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구상이었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두 달쯤 지난 2009년 1월,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선보임으로써 논문 속 내용을 직접 구현해 보였습니다.
블록체인, P2P 네트워크의 한계 뛰어넘다
블록체인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네트워크 내의 모든 참여자가 공동으로 거래 정보를 검증, 기록, 보관함으로써 ‘공인된 제3자’가 없어도 거래 기록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분산 원장 기술’을 말합니다. 즉 P2P 네트워크상에서 블록체인을 만들어 거래장부의 무결성을 입증하는 구조를 만들어 보안과 신뢰성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전략입니다.
P2P(Peer to Peer) 네트워크는 일대일 또는 서버-클라이언트로 연결된 게 아니라 수많은 사용자가 거미줄처럼 서로 얽히고설킨 네트워크를 일컫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영화나 음악 등 데이터를 주고 받는 토렌트나 소리바다가 대표적인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P2P 네트워크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용자가 서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토렌트나 소리바다를 써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가짜 파일을 내려 받은 적이 있을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토시 나카모토는 작업증명(Proof-of-Work)이라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작업증명이란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정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연속해서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공동작업에 참여한 사람이 선의를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뜻합니다.
모든 비트코인 사용자는 P2P 네트워크에 접속해 똑같은 거래장부 사본을 나눠 보관합니다. 이 거래장부는 10분에 한 번씩 최신 상태로 갱신되고, 몇몇 사람이 장부를 멋대로 조작할 수 없도록 과반수가 인정한 거래 내역만 장부에 기록합니다. 기존 장부가 훼손된 곳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훼손되지 않은 장부를 복제해 빈 곳을 메웁니다.
이처럼 10분에 한 번씩 만드는 거래 내역 묶음을 ‘블록’(block)이라고 부릅니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 거래 기록이 저장된 거래장부 전체, 즉 데이터베이스(DB)를 가리키고, 거래장부를 공개, 분산해 관리한다는 뜻으로 ‘공공 거래장부’ 또는 ‘분산 거래장부'(distributed ledgers)로도 불립니다.
예를 들어 금융거래를 원하는 A가 B에게 돈을 보내려 하면, 온라인에서 이 거래 내용이 담긴 블록이 형성됩니다. 형성된 블록은 네트워크상의 모든 참여자에게 전송되며,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참여자가 해당 거래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승인된 블록이 기존 블록체인에 연결되면 실제 송금이 완성됩니다.
블록체인, 새로운 금융시장을 창조하다
2016년에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17년까지 전 세계 은행의 80%가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실험적인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로 출발한 블록체인이 글로벌 은행의 심장부로 속속 진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는 거래장부를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다양한 대책을 세웁니다. 거래장부를 보관하는 서버는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건물 깊숙한 곳에 두고 각종 보안 프로그램과 장비를 구비하는 등 외부 침입에 대비하여 엄청난 비용을 지불합니다.
따라서 안정성과 비용적인 측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을 담보한다면 블록체인은 금융의 패러다임 변화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것입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을 이용한 첫 번째 응용 사례면서 블록체인을 활용해 금융회사처럼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예시이기도 합니다.
2016년 미국에서는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등 40여 글로벌 대형 은행이 블록체인을 위해 의기투합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블록체인 선두업체 R3와 제휴해 R3CEV
라는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각 회원사끼리 블록체인 정보를 공유•활용해 송금, 결제 등 금융 업무에 적용할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장외 주식시장인 나스닥(NASDAQ)도 2015년부터 비상장 주식 거래에 블록체인 기술을 시범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글로벌 은행의 블록체인 추세에 힘입어 국내 금융사들도 한둘 씩 블록체인 기술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KEB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R3CEV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외환 송금 서비스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스타트업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KB국민은행은 국내 블록체인 전문기업 코인플러그와 협업해 블록체인 기술을 직접 도입하고, 외화 송금, 개인인증서, 문서보안 서비스 개발에 15억 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보험, 증권, 카드 등 삼성 금융 계열사도 블록체인을 활용해 이용자들에게 낮은 수수료와 기존보다 강력한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처럼 블록체인으로 대표되는 핀테크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변화를 주도할 것입니다. 금융산업에서 디지털 기술은 거래 프로세싱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시키고, 정보의 실시간 공유 및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하며, 마케팅과 상품추천의 개인 맞춤화 및 고도화를 달성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사업모델 혁신, 즉 핀테크 혁신은 가치 제안과 운영모델의 차별화를 통해 소비자의 기대 수준을 상승시키고 다시 소비자의 행태를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결국, 핀테크 혁신은 진정한 ‘고객중심주의’의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블록체인이 몰고 올 파괴적 혁신
블록체인 기술이 불러올 근본적인 변화는 디지털 환경에서 신뢰 프로세스를 완벽하게 재정립하여 온라인 신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상 참여자를 신뢰할 필요 없이 완전히 분산된 방식으로 자신의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의 디지털 신뢰 방식을 설계합니다.
알 수 없는 상대방을 신뢰하기 어려운 디지털 공간을 타인과의 거래가 쉬운 디지털 세상으로 변화시키고, 더 직접적이고 분권화된 경제활동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것이 블록체인의 힘입니다. 결과적으로 인증, 안전 등의 중재자뿐만 아니라 거래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등 관련 비즈니스에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블록체인은 신뢰를 분산시킴으로써 중재자 없이 직거래할 수 있고 임의로 조직할 수 없는 디지털 플랫폼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는 시스템간의 데이터 동기화 필요성을 제거함으로써 기존 시스템 구조에 효율성을 배가시킬 것입니다. 이런 효과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기계 및 부품 등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결재시스템과 결합하여 다양한 부품으로 구성된 기계가 기계 간, 부품 간 거래를 통해 유지보수, 교체 등의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통해 기계 자체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인공지능 경제로의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산 추적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국가 간 이동하는 상품을 자동으로 추적할 수 있고, 세금 자동 납부 및 공제를 위한 혁신 도구로 사용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블록체인에 의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금융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향후 세계 경제 변화를 주도할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 기술인 블록체인의 활용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글 l 이상옥 l 테크노인문학연구소장
이상옥 씨는 테크노인문학연구소 소장으로 현장에서 15년 넘도록 IT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강의와 비즈니스 컨설팅을 통해 실전에 적용하는 실무형 전문가이다. 현재는 데이터 거버넌스를 근간으로 비즈니스적인 통찰력을 통해 신사업과제를 발굴하고 구축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저서: 가상현실을 말하다(2016), 빅데이터 적용이 답이다(2015), 모르면 손해보는 IT이야기(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