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LG CNS 기술블로그 DX Lounge에서 최신 IT 소식을 만나보세요!

IT Trend

인터넷의 탄생

2016.08.09

인터넷의 초기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은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한 1957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것인데요. 냉전 당시 이 인공위성 발사의 성공에 충격을 받은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는 1958년 2월에 새로운 정부 기구를 창설하였습니다.

혁신과 창의적인 사고의 중심지로서,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기발한 최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등연구계획국(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을 창설한 것입니다. ARPA(1972~1993년에는 DARPA로 알려짐)는 Bolt, Beranek and Newman(BBN)과 같은 도급 회사가 참여한 가운데 원거리 패킷 교환 네트워크 연결 컴퓨터의 원형을 실질적으로 개발하고 구현했습니다.

ARPANET이라고 하는 이 네트워크는 후일 인터넷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정보 처리기술과(IPTO, Information Processing Techniques Office)로 알려진 ARPA 컴퓨터 연구 부서의 초대 책임자는 MIT 심리학 교수를 역임한 J.C.R. 릭라이더(Licklider)였습니다.

단순한 계산을 넘어 컴퓨터의 활용도를 넓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했던 릭라이더는 미국의 주요 연구기관과 제휴를 맺고 기금을 조성했습니다.

1962년과 1963년에 그는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전 세계의 여러 장소에서 데이터, 정보, 프로그램에 빠르게 접속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은하 네트워크(Galactic Network)’의 개념을 시각화해 놓은 일련의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체 시스템을 구성하는 컴퓨터의 대부분 혹은 전부가 통합 네트워크에서 함께 작동하는 일은 아마도 매우 드문 경우로만 한정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통합 네트워크를 실현하는 기능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l 동료들에게는 ‘릭’으로 알려진 J.C.R. 릭라이더(1915-1990)는 대규모의 광역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ARPA에서 근무하는 동안 미국의 여러 주요 대학에 높은 수준의 컴퓨터 과학 강의를 마련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했습니다. (출처: https://goo.gl/SDjjo2)

릭라이더는 1965년에 MIT로 복귀했지만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와 같은 후임자들이 그의 비전을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수많은 기술적인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고,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 혁신에 의존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가 바로 패킷 교환 기술의 개발이었습니다. RAND의 젊은 엔지니어인 폴 바란(Paul Baran)은 핵 공격이 발생하더라도 미 공군이 미사일과 비행기에 대한 명령권과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통신을 보호하고 장애가 발생해도 안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1964년에 그는 ‘분산 적응형 메시지 블록 교환’을 설명하는 논문을 냈습니다.

이는 데이터가 출발지와 도착지에 관한 세부정보가 적힌 ‘데이터그램 또는 패킷’으로 나누어진 다음, 사용 가능한 경로를 통해 전송되어 도착지에서 올바른 순서로 재결합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혁신적인 개념은 미국의 레너드 클라인록(Leonard Kleinrock)과 영국 국립 물리학 연구소(National Physical Laboratory)의 도널드 데이비스(Donald Davies)도 연구하고 있었으며, 기존의 회로 교환 통신 방식보다 더 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67년에 로버트 테일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ARPANET에 대한 세부적인 제안서를 작성했고, 패킷 교환은 최초의 광역 네트워크인 ARPANET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인터페이스 메시지 프로세서(IMP, Interface Message Processor)로 알려진 작고 표준화된 마이크로컴퓨터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실행했으며, 데이터 패킷을 저장하고 전달하며 호스트 사이트의 컴퓨터에 대한 게이트웨이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라우터와 유사했습니다.

다음 해, ARPA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140개가 넘는 기업에 입찰을 공고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이 제안이 너무 혁신적이라고 생각해 입찰을 거부했고 12개 기업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중 Bolt, Beranek and Newman(BBN)이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하고, BBN은 로렌스 로버츠(Lawrence Roberts)가 속해 있던 ARPA의 팀과 함께 IMP와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전화선을 임대했으며 여기에 접속한 초기 모뎀의 데이터 전송 속도는 초당 56kbit에 불과하여 오늘날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l Honeywell DDP-516 컴퓨터에 기반을 둔 1세대 IMP는 24KB에 불과한 자기 코어 메모리를 사용하여 실행되었으며, 각 IMP는 최대 4대의 로컬 호스트 컴퓨터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s://goo.gl/N5ZbfR)

1969년 말 무렵, 4개의 노드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습니다. 4개의 노드 중 하나는 유타 대학에 있었고, 나머지는 산타 바바라 캘리포니아 대학,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와 그의 팀이 근무하던 스탠퍼드 연구소(참고: http://blog.lgcns.com/1060), 그리고 패킷 교환의 선구자인 레너드 클라인록이 근무하던 UCLA에 있었습니다.

10월 29일 오후 10시 30분, 이들 중 마지막 2개 노드 간에 최초로 통신이 이루어집니다. 원래 전송하려고 했던 이 역사적인 첫 번째 메시지는 ‘로그인(login)’이었으나, 앞 두 글자가 전송 및 수신되고 난 후에 시스템 장애가 발생하여 나머지는 전송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을 재부팅하자 잠시 후에 테스트에 성공했습니다.

l 위 사진은 당시 대학원생 프로그래머였던 찰리 클라인(Charley Kline)이 ARPANET을 통해 전송한 첫 번째 메시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메시지는 IMP를 통해 레너드 클라인록의 SDS Sigma 7 컴퓨터에서 스탠퍼드 연구소로 전송되었습니다. (출처: https://goo.gl/y6CCwV / https://goo.gl/ppXjMe)

네트워크의 IMP와 호스트의 수는 점점 늘어갔습니다. 1972년 말에는 24개의 사이트가 ARPANET에 연결되었는데 여기에는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미국방부(US Department of Defense) 및 나사(NASA)도 포함되었습니다.

이 당시 워싱턴 D.C.의 힐튼 호텔에서 개최된 1972년 국제 컴퓨터 통신 학회(ICCC, International Computer Communication Conference)에서 ARPANET이 최초로 공개 시연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밥 칸(Bob Kahn)은 ARPANET의 첫 번째 ‘킬러’ 앱을 시연할 준비를 했는데, 그것은 레이 톰린슨(Ray Tomlinson)이 BBN 재직 시절에 개발한 전자 메일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사용자가 메일과 메시지를 남길 수는 있었지만, 이는 시분할 시스템에서 해당 사용자와 동일한 컴퓨터에 접속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했습니다. 당시 ARPANET의 제어 시스템 분야에서 일하던 톰린슨은 CYPNET이라고 하는 네트워크 전송 프로그램과 기존의 로컬 메시지 전송 및 읽기 프로그램인 SNDMSG의 기능을 결합하여 이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습니다.

톰린슨은 컴퓨터 사용자의 로그인 이름과 네트워크에 있는 호스트 컴퓨터의 이름을 나누는 기호로 @을 선택했습니다.

1971년, 톰린슨은 ARPANET을 통해 통신하던 2대의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 DEC-10 컴퓨터 간에 첫 번째 메시지를 전송했습니다. 이메일 내용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톰린슨은 나중에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밝혔는데요. “테스트 메시지는 진짜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것이었기에 저는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첫 번째 메시지는 QWERTYUIOP(키보드 영어 자판 맨 윗줄의 글자) 또는 그와 비슷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ARPANET 팀의 중요 인물 중 한 사람인 로렌스 로버츠(Lawrence Roberts)는 톰린슨의 혁신을 기회로 삼아 TENEX의 텍스트 에디터인 TECO를 사용하여 일련의 매크로를 작성했고 이는 최초의 이메일 유틸리티 애플리케이션이 되었습니다.

RD라는 이름의 이 애플리케이션은 메시지의 나열, 저장, 삭제를 지원하고, 이름 및 날짜별로 간단한 정렬이 가능했으며 답장 옵션과 메시지 전달 기능도 제공했습니다.

이전보다 기능이 향상된 새로운 이메일 애플리케이션이 계속 등장하면서, 네트워크를 사이에 두고 사용자 간의 이메일 사용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J.C.R. 릭라이더가 앨버트 베자(Albert Vezza)의 Applications of Information Networks에서 밝힌 바와 같이 “ARPANET이 사람 간의 의사소통에 있어 미국의 일반적인 우편 체계나 전화 통화보다 훨씬 중요한 이점을 지닌 수단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1973년에 ARPA로 복귀하여 2년 동안 다시 IPTO를 이끌게 된 릭라이더는 이메일의 사용이 급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는데, 이는 기술적인 것보다는 작업량 및 인간성과 더 관련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자라고 하면 격식과 완벽함을 떠올리는데, 네트워크 메시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마도 전화와 마찬가지로 네트워크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1973년이 끝나갈 무렵, 이메일은 ARPANET을 통해 이동하는 전체 데이터의 약 75%를 차지했습니다.

1973년은 인터넷 역사에서 중요한 해였습니다. 파일 전송 프로토콜(FTP, File Transfer Protocol)이 네트워크에 구현되어 최초로 파일 다운로드가 가능하게 되었고 ARPANET은 37개 호스트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하와이로의 위성 링크, 그리고 ARPANET과 NORSAR(Norwegian Seismic Array)를 잇는 또 하나의 위성 링크가 있었는데, 이로써 노르웨이는 이 걸음마 단계의 네트워크(ARPANET)에 연결된 최초의 해외 노드가 되었고 얼마 안가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또한 하버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로버트 메트칼프(Robert Metcalfe)는 대역폭과 데이터 전송 속도가 훨씬 더 높은 로컬 네트워크 케이블을 통한 물리적 전송 표준에 대한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제록스 사의 팔로 알토 연구 센터(PARC, Palo Alto Research Centre)에서 이 개념을 최초로 테스트했으며, 이는 제록스 사에서 개발 중인 초기 레이저 프린터를 컴퓨터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건물 내에 있는 수십 혹은 수백 대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는 여러 해가 소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더넷 기술은 전 지역에 퍼져 전 세계 수많은 조직으로 컴퓨터 네트워킹을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l 이더넷은 가장 강력한 LAN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더넷을 최초로 제안했던 로버트 메트칼프는 1981년에 3Com 회사를 공동 설립했으며, HP는 2010년에 이 회사를 미화 27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출처: https://goo.gl/vsE3xW)

또한, 1973년은 전송 제어 프로토콜/인터넷 프로토콜(Transmission Control Protocol/Internet Protocol)의 약어인 TCP/IP의 정착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TCP/IP는 다양한 유형의 네트워크가 서로 표준화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통신하는 방법을 규정하는 통신 프로토콜입니다.

다른 네트워크가 개발되기 시작하고 ARPANET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Network Control Protocol 소프트웨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증가하는 수요와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BBN 사에 소속되어 ARPANET의 1세대 IMP 개발 작업에 참여했던 로버트 칸(Robert Kahn)은 스탠퍼드 대학의 빈튼 서프(Vinton Cerf)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이 둘은 어느 컴퓨터 네트워크라도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TCP를 개발했습니다.

TCP는 오류를 수정하고 만회하는 중요한 기능을 이용하여 손실된 데이터 패킷을 재전송할 수 있었으며, ‘블랙박스’ 디자인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TCP를 사용하는 네트워크가 내부 변경 없이도 다른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NASA의 SPAN을 비롯한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실제 시험을 거친 후, 이 프로토콜 집합은 인터넷이 본격화된 1983년에 인터넷 표준으로 정식 채택되었습니다.

l 2010년 9월, 빌뉴스의 빈튼 서프(출처: https://goo.gl/j8tT3W)

[‘A Smart, Creative World: Past and Future’ 연재 현황]

(1) 컴퓨터의 탄생, 시대를 앞서간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http://blog.lgcns.com/950

(2)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http://blog.lgcns.com/982

(3) ENIAC: 세계 최초의 빠른 컴퓨터
http://blog.lgcns.com/1001

(4)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http://blog.lgcns.com/1021

(5) 초기 컴퓨터의 진화
http://blog.lgcns.com/1042

(6) 컴퓨팅의 미래를 보여준 더글러스 엥겔바트
http://blog.lgcns.com/1060

(7) 웹의 발명: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http://blog.lgcns.com/1165

(8) 인터넷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1

(9) 위키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5

(10) 로봇의 발전
http://blog.lgcns.com/1182

글 ㅣ클라이브 기포드 (Clive Gifford)

  • 관련 자료

A Brief History of the Future: The Origins of the Internet – John Naughton (Phoenix, 2000).
An excellent, well-researched book on the Internet’s beginnings and its key proponents and innovators.

Where Wizards Stay Up Late: The Origins of the Internet – Katie Hafner and Matthew Lyon (Simon & Schuster, 1998).
A highly readable account of the formation of computer networking focusing on ARPANET’s formation and early development.

Read one of J.C.R. Licklider’s 1963 memos on the issues facing early computer networking.
http://www.kurzweilai.net/memorandum-for-members-and-affiliates-of-the-intergalactic-computer-network

Download Licklider’s two seminal papers, Man-Computer Symbiosis (1960) and The Computer as a Communications Device (1968 and co-authored with Bob Taylor) from the following location.
http://memex.org/licklider.pdf

Download the 1979 information brochure on ARPANET produced by the Defense Communications Agency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1/ARPANET_Info_Brochure.pdf?uselang=en-gb

챗봇과 대화를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