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Healthcare)
정신 건강 분야에서 VR이 사용된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90년대부터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치료하는 데에 사용됐는데요. 다만, 더 많은 질병을 치료하기에는 환자의 몰입도가 낮다는 문제로 외면을 받았습니다. 충분한 데이터를 얻을 수도 없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연구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오늘날, 몰입형 기술의 발전으로 VR이 PTSD 외에도 공포증이나 불안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입증됐습니다. 더불어 알코올 및 약물 중독이나 우울증, 섭식 장애 등을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죠. 단순히 시각 효과로 보여주는 것만 아니라 청각이나 촉각 등 다양한 감각 기술로 VR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환자에게 몰입 환경을 제공해 의료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는 분야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2021년 유럽비뇨기학협회(EAU21) 연례총회에서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VR로 환자들을 몰입하게 하는 것이 의료 시술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연구는 요도에 내시경을 삽입하는 요도경검사 시 VR 헤드셋을 착용한 환자와 착용하지 않은 환자를 비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요도경검사는 불쾌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후속 조치를 거부하는 환자가 많은데요. 폴란드 브로츠와프 의과대학의 보이치에흐 크라예프스키 교수는 평균 66세인 환자 103명에게 무작위로 아이슬란드 풍경을 보여주면서 요도경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검사 중 혈압, 산소 포화도, 심박수 측정과 FLACC 점수 측정이 이뤄졌는데요. VR 헤드셋 착용자는 메스꺼움이나 현기증이 발생했으나 통증 점수가 낮았고, 모든 환자가 통증을 참아내어 중단하지 않고 검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크라예프스키 교수는 “환자들은 고통을 덜 느꼈다고 보고했고, 이것은 우리의 관찰도 반영된 결과다.”라면서 “신장결석이나 전립선 조직검사 등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소마취 부담을 줄이면서도 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VR에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대학교의 연구진들은 MRI 촬영에 VR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연구진은 MRI 스캐너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VR 헤드셋을 개발했는데요. 주변 환경을 차단하고, 스캐너 노이즈, 스캐너 테이블 이동, 테이블 진동 등 MRI 검사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VR과 일치시키면서 불안감을 줄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노이즈와 진동은 주변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시각 장면을 포함해 MRI 검사가 아닌 공사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으로 바꿔 놓는 방식입니다. 수석 연구원인 쿤 첸 박사는 ‘”5세 미만 아동의 약 50%가 MRI 스캔에 실패하는데, 성공적인 스캔을 위해 진정제나 마취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VR 환경에 몰입하면 실제 주변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몰입 환경은 큰 의료혜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몰입감은 전반적인 의료 환경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AI를 이용한 의료 실습 시뮬레이션, 비트로 테크놀로지(Virtro Technology)
미국 채츠워스 기반 스타트업 ‘비트로 테크놀로지’는 AI 가상 인간을 도입한 몰입형 의료 실습 시뮬레이션을 개발했습니다. 가상 인간은 문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응답하는 자연어 처리 기술이 적용된 일종의 챗봇인데요. 학습자는 VR 헤드셋만 착용하면 어디서든 학습이 가능하며, 학습 상황에 따라서 환자이거나 동료인 가상 인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가상 인간의 장점은 무한한 인내력과 체력, 저렴한 가격입니다. 학습자는 시뮬레이션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는데, 가상 인간은 대화 흐름에 맞춰서 다른 응답을 제공하므로 상호작용 경험을 쉽게 늘릴 수 있죠. 실습 데이터를 학습해 점점 더 정교해진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머시브 헬스(Immersive Health)로 불리는 이 플랫폼은 일반적인 의료 학습보다 275% 높은 학습 효과와 4배 높은 자신감, 3.75배 빠른 학습 속도를 제공한다고 회사는 설명했습니다.
VR을 이용한 심리 치료, 레이(Rey)
미국 오스틴의 스타트업 ‘레이(Rey)’는 이미 입증된 치료 방법을 기반에 둔 VR 심리 치료를 개발합니다. 작년에 설립된 신생 회사지만, 설립자인 디팩 고팔라크리슈나는 20년 동안 건강 기술 산업에 종사한 고참입니다.
테크 기업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인 크런치베이스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부터 26억 달러가 온라인 정신 건강 분야에 쏟아졌다고 하는데요. 이는 온라인 치료의 확대 및 코로나19 여파로 정신 건강이 악화된 환자 증가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관련한 회사의 급증에도 정신 건강 관련 종사자 부족으로 수급 불균형이 일어나면서 젊은 임상의들의 부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자는 늘어나는데 의사가 없는 것이죠.
레이는 인지 행동 치료, 대화 치료, 약물치료에 VR 치료를 조합해 개인화된 치료 방법으로 정신 건강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VR 경험을 지시함으로써 진료 시간을 최적화하고, 일부는 자동화해 효율적인 의료 활동을 이어갈 수 있죠. 회사에 따르면, 고소 공포증의 경우, 평균 2시간 동안의 몰입형 VR로 치료했을 때 환자가 느끼는 공포가 68%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는 의사가 2시간 동안 환자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시간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고팔라크리슈나 박사는 포브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의료 서비스는 발전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약물을 과다 복용하고, 올바른 심리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로케이션 VR(Location-Based VR, LBVR)
‘로케이션 VR(Location-Based VR, LBVR)’은 로케이션 기반 엔터테인먼트(Location-Based Entertainment, LBE)에 VR을 적용한 파생 분야였습니다. 온라인 연결이 익숙해진 때에 워터파크, 오락실과 같은 공간은 기술적인 외면에 놓여있었는데요. 오프라인 활동에 대한 요구가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새로운 경험을 더한다는 개념으로 LBE는 기술 시장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투 빗 서커스(Two Bit Circus)와 같은 업체가 대표적인데, 과거의 서커스 공연에 기술을 더해서 체험형 오락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었죠.
이런 LBE 사업에 VR은 획기적인 솔루션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헤드셋만 갖추면 많은 사람을 동시에 체험 공간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시각적 체험에 기반한 VR은 몰입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LBE는 고소공포증 체험에 실제 판자 위를 걷게 하는 몰입감을 더할 장치들을 더하기 시작했고, 점점 고도화하면서 ‘LBVR’이라는 독자적인 분야를 만들었습니다.
몰입형 기술을 다양하게 접목한, 더 보이드(The Void)
LBVR을 한 단계 도약시킨 업체는 ‘더 보이드(The Void)’였습니다. VR 엔터테인먼트 어트랙션 회사인 더 보이드는 영화 프로듀서인 켄 브레트슈나이더, 시각 효과 아티스트인 커티스 힉먼, 상호작용 크리에이터 제임스 젠슨이 2015년 공동 설립했는데요. 2016년 7월에 고스트 버스터즈 테마의 VR 어트랙션을 선보였고, 이후 관심을 보인 디즈니의 투자로 스타워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등 디즈니 IP의 어트랙션을 공동 개발했습니다.
더 보이드의 LBVR은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미로처럼 탐험할 수 있는 긴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참여자는 이 공간을 탐험하면서 벽을 만지거나 주요 사물과 가상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는 아무런 장치가 되지 않은 벽이지만, 가상에서는 문을 열 수 있는 버튼이 부착되는 등 시각적, 촉각적 상호작용에 현실감을 더합니다.
두 번째 특징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입니다. 참여자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착용해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온전히 가상 세계의 소리만 듣게 됩니다.
세 번째는 22개의 진동 센서가 탑재된 햅틱 슈트입니다. 가상 세계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경험은 햅틱 슈트를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특징은 천장의 모션 트래킹 카메라인데요. 이는 참여자의 움직임을 읽어서 몰입감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컨대, 가상 세계에서는 참여자가 직선인 길을 걷고 있지만, 실제로는 방향을 꺾어서 걷게 만드는데요. 이때, 참여자가 직선으로 걸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모션 트래킹 카메라입니다. 그래야 머무는 공간을 재활용해 다른 가상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더 보이드 전 CEO 클리프 플러머는 “당신이 느끼고, 냄새 맡는 것들을 진짜라고 뇌가 확신하게 하는 것이 LBVR이다.”라면서 “환경을 믿도록 감각을 자극하거나 차라리 바보로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시각 외 다른 감각을 자극해 가상의 시각 경험이 가상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이 LBVR인 것입니다. 실제로 더 보이드의 어트랙션인 ‘스타워즈: 제국의 비밀’에서는 용암의 따뜻함을 느끼고, 연기 냄새를 맡으며, 산들바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참여자는 시각적으로 용암이 가짜라는 걸 인지해도 다가갈수록 뜨거워지기 때문에 실제 어떤 장치인지는 인지하지 못한 채 실제 용암을 마주한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합적인 감각이 시각 효과에 몰입감을 더하는 것이죠.
하지만 심각한 경영난과 코로나19 여파로 어트랙션이 폐쇄되면서 더 보이드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확하게는 LBVR이 동력을 잃은 것이죠. LBVR 어트랙션이 재개장할 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투자는 줄었고, 더 보이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LBVR 회사들은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LBVR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몰입형 기술을 가장 다양하게 접목한 VR 분야이기 때문인데요. LBVR을 부르는 다른 명칭은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이며, 바로 몰입형 기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그 목표입니다.
차량 내 몰입경험, 홀로라이드(Holoride)
독일 바이에른 뮌헨의 스타트업 ‘홀로라이드(Holoride)’는 내비게이션 데이터와 동기화한 VR로 차량 이동을 테마파크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LBVR의 한계는 고정된 물리적 공간에 있는데요. 가상의 바다를 건너고 싶어도 물리적 벽이 가로막으면 갈 수 없습니다. 홀라라이드는 LBVR의 이런 문제를 차량 이동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홀로라이드가 개발한 VR 플랫폼은 승객을 위한 홀로라이드 앱, 콘텐츠 제작 도구인 엘라스틱 SDK(Elastic SDK), 콘텐츠와 차량을 동기화하는 차량 로컬라이제이션(Vehicle localization)으로 구성됩니다. 창작자는 기존 게임 엔진을 사용해 엘라스틱 SDK를 통해 VR 콘텐츠를 설계하거나 시험할 수 있는데요. 콘텐츠는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 플랫폼에서 배급되며, 승객은 홀로라이드 앱에서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한 콘텐츠는 차량 로컬라이제이션으로 위치 및 경로를 파악해 실시간으로 동기화합니다. VR 헤드셋을 장착한 승객은 이동 중 경로를 따르는 VR 경험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홀로라이드도 체험 중 승객이 이동 경로를 바꿀 수 없다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홀로라이드의 목적이 차량 이동 중 지루한 시간을 VR 경험으로 보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경로를 따라서 콘텐츠를 동기화하는 기술은 LBVR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확장성을 지녔으며, 몰입감을 위한 감각만 아니라 이동성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자율 주행이 고도화한 지점에서는 차량 내 몰입 경험이 일상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입니다.
VR로 원격 근무의 한계를 극복할 브렐리온(Brelyon)
미국 샌 마티오 기반 딥테크 디스플레이 스타트업 ‘브렐리온(Brelyon)’은 몰입형 모니터로 헤드셋 없는 VR을 구현했습니다.
울트라 리얼리티 디스플레이(Ultra Reality Display)로 불리는 이 기술은 최초의 몰입형 모니터이자 헤드셋 없는 VR입니다. 로케이션 VR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헤드셋 착용으로 가려진 시야 탓에 오직 시각으로 가상 세계를 인지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인데요. 가상 공간이 크면 클수록 물리적 공간도 커져야 몰입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렐리온은 모니터 속에 VR 공간을 확장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울트라 리얼리티 디스플레이는 기존 스테레오스코피 기법의 3D 디스플레이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3D 디스플레이는 스테레오스코피 기법으로 착시를 일으켜 영상에 입체감을 부여하는데요. 실제로는 입체가 아니지만, 마치 영상이 디스플레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반면, 울트라 리얼리티 디스플레이는 초원뿔형 광전 팽창 기술(Superconic Light-Field Expansion Technology, SLET)로 광전 분포를 기하학적으로 변환해 디스플레이에 합침으로써 모니터 안에 깊은 공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울트라 리얼리티 디스플레이로 가상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진행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집에서 책상에 앉은 채 몰입형 모니터를 바라보면 안쪽에는 다른 동료들이 자신의 가상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자리를 떠나면 집이지만, 자리에 앉는 동안만큼은 모니터 속 확장된 가상 사무실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책상이 곧 가상에 접근하는 매개로써 앉는 순간 모니터 속 공간에 있다는 착각을 심는 가장 독특한 LBVR이라고 할 수 있죠.
1세대 울트라 리얼리티 디스플레이는 101도 시야를 제공하는 4K 24인치 모니터로, 인식하게 되는 크기는 122인치입니다. 초기에는 다중 모니터를 사용하는 금융 업계의 원격근무에 주로 사용될 예정인데요. 브렐리온은 향후 더 넓은 디스플레이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출처]
1. EAU21({+}https://eaucongress.uroweb.org/beautiful-vr-setting-could-reduce-pain-in-unpleasant-medical-procedure/+)
2. Virtro Technology({+}https://www.virtro.ca+)
3. Ray({+}https://getrey.com+)
4. Holoride({+}https://www.holoride.com+)
5. Brelyon({+}https://brelyon.com+)
글 ㅣ LG CNS 정보기술연구소 기술전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