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에너지 업계를 관통하는 최고 화두를 물으면, 아마도 다들 ‘신산업!’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에너지 신산업은 정부가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와 신기후체제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등의 위기 요인을 신기술로 넘어서고, 이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운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에너지 신산업’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9월 열린 에너지 신산업 대토론회 이후입니다. 이후 정부는 에너지 신산업을 정책 기조로 정하고 다양한 육성 지원책을 펼쳐나가고 있는데요. 정부의 에너지 관련 국책사업 전반이 신산업의 방점을 찍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에너지 분야 대표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자회사들과 함께 2조원 가량의 펀드까지 조성했습니다.
에너지 기업은 물론 그 밖에 건설, IT 등 다양한 업종에서도 에너지 신산업에 뛰어들고 있는데요. LG CNS도 적극적으로 에너지 신산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신재생에너지에서부터 제로에너지건축물까지
사실 에너지 신산업이라는 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정부가 꼽은 주요 사업모델은 ‘수요자원거래시장’, ‘ESS 통합서비스’, ‘에너지자립섬’, ‘태양광 대여’, ‘전기자동차’, ‘발전소 온배수열 활용’, ‘친환경 에너지타운’, ‘제로에너지빌딩’등으로 개중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것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화석연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 유통하고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모든 활동을 에너지 신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부는 이들 중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모델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최종적으로 수출산업화 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각 사업모델을 면면히 살펴보면, ‘전기자동차’는 이미 최근 글로벌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우리나라도 전기차 보급과 충전 인프라 확대를 통해 친환경 교통을 구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태양광 대여’는 태양광 설치 시, 관련 비용을 다 내지 않고 대여 형태로 설비를 빌려 쓰는 모델입니다. 초기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태양광 대중화라는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너지저장장치인 ESS’는 커다란 배터리입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한 발전 출력을 안정화하고, 전기를 저장하여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데요. 시설의 전체적인 에너지 소비 운용을 할 수 있습니다.
‘제로에너지 빌딩’은 단열재, 3중 창호 등 고효율 건축자재와 자연채광, 공기 흐름 등을 고려해 설계한 것으로, 친환경 건축물에 신재생에너지를 더한 모델입니다. 일반적으로 제로에너지 빌딩에서는 ESS를 필수적으로 포함합니다.
‘친환경 에너지타운’과 ‘에너지자립섬’은 특정 지역에 에너지 생산시설을 두고 마을 단위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차이점은 사업 배경인데, 친환경 에너지타운은 하수처리장, 가축분뇨처리장 등의 지역혐오시설을 에너지 생산시설로 바꾸기 위해 시작했지만, 에너지자립섬은 전력계통 연결이 어려운 도서 지역에 디젤발전 대신 친환경 에너지 공급 체계를 갖추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발전소 온배수열 활용’은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냉각수를 농업 및 어업에 재활용하는 모델입니다. 냉각수에 남아있는 열을 다시 쓴다는 점에서 에너지 하베스팅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한계에 접어든 전원개발과 에너지 신산업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에너지 생산단위는 지역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가정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주 먼 얘기겠지만, 전문가들은 에너지 자급자족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예견하는데요. 전력 업계에서 흔히 얘기하는 ‘분산전원모델’이 에너지 신산업 전반에 걸쳐있는 셈입니다.
분산전원은 마을 단위로 가스 및 전력 공급체계를 갖춰 별도의 에너지 계통망을 갖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미 해외에서는 목재계열 바이오매스를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분산전원 마을 모델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 곳에서 에너지를 대량 생산해 먼 곳까지 이동시키는 것 보다는 각 수요처에서 생산해 인근으로 유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분산전원은 국토가 넓고 지역마다 의존할 만한 자원이 있는 경우에 경제적인 모델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이 많지 않고 국토도 좁은 데다 송전에 따른 손실도 낮은 곳에서는 분산전원이 경제적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대용량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에 각지에 뿌리는 것과 분산전원 모델 중 무엇이 더 경제적인지는 아직도 갑론을박 중입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에너지 신산업을 통해 분산전원 활성화에 나선 것은 여건을 떠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불과 4년 전, 국가 전력산업은 밀양 송전탑 문제로 크게 홍역을 치렀습니다. 한전은 신고리 원전과 북경남 변전소를 연결하는 765kv의 초고압 송전망을 구축하려 했지만, 지역민의 반발에 쉽사리 공사를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밀양 송전탑은 국가 전원계획 방법론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당진 지역이 송전망 용량 추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지요. 송전망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원전은 가는 곳마다 지역민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고, 석탄 화력도 환경 유해성 논란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상대적으로 청정연료를 쓴다는 LNG 복합화력도 지역혐오시설로 여겨지며 신규건설 및 리모델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문화적으로 대용량 발전소와 송전망 같은 과거의 에너지 공급체계는 더이상 들어설 곳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끗하게 만들고 적게 쓰며,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곳에서 자체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분산전원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죠.
에너지 신산업의 종착점 ‘시장 거래’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를 좇던 웹2.0 시대부터 지금의 인터넷 산업을 이끄는 주축은 ‘집단지성’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온라인상에 참여하면서 모이는 수많은 정보의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과거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 미래를 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에너지 신산업도 집단지성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시장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전력 공기업들과 대기업들로 이루어진 에너지 시장에, 소규모 단위기업의 시장참여, 나아가 개인 단위 전력생산과 판매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마트그리드 사회를 전망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쌀 때 전기를 구매해, 비쌀 때 판매한다”라는 개념도 개인의 전력시장 참여를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태양광, 풍력, ESS 등 소규모 전력 설비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하고 이를 통해 생산한 전기와 소비감축 노력을 하나의 제품으로 인정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해야 합니다.
에너지 신산업 주요 사업모델 중 하나인 수요자원 거래시장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수요자원 거래시장은 공장, 빌딩, 목욕탕, 마트, 아파트 등 다양한 형태의 전기 소비자가 절전행동을 약속하고 절전을 통해 아낀 전기용량을 시장에 거래하는 수익모델입니다.
에너지 신산업에서의 미래 소비자의 역할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절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은 전기요금 절감밖에 없었지만,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만큼의 전기를 줄여 이를 수익 사업화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요자원 거래시장을 확대한 분산전원중개사업도 추진을 앞두고 있습니다. 소규모 발전자원들을 하나로 모아 하나의 대규모 발전소처럼 통합 운영 거래하는 모델로, 향후 분산전원 시대를 대비한 시장입니다.
수요자원, 분산전원 등 중소 규모 전력시장 개설은 누구나 전력시장에서 발전과 판매사업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구매하기만 하지만, 앞으로는 한전은 물론, 이웃, 인근 마트와 공장 등에 전기를 파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에너지 신산업이 여는 새로운 미래,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 | 조정형 | 전자신문 산업경제부 에너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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