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은 주로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각종 신분증이나 포인트 카드, 회원증을 보관하는 식이죠. 또한 지갑은 개인의 재정 상태, 취향, 신분 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지갑이 점차 얇아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현금을 지갑에 두둑하게 넣어 다니지도 않습니다.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데요. 대신 지갑은 스마트폰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단골 식당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각종 페이로 결제하고, 쇼핑몰에서 원하는 상품을 살 때도 디지털 지갑에서 모든 것을 처리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현금 사용은 감소하고 디지털 결제 시장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2020년 초 이후 많은 사람은 비대면 디지털 결제에 더욱더 익숙해졌습니다. PC나 스마트폰에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디지털 지갑은 기본적인 결제는 물론 송금 및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지갑의 성장
코로나19 이후 많은 기업이 ‘비접촉, 비대면’ 방식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는 기술적 진보와 동시에 금융 혁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는 디지털 지갑이 있는데요. 디지털 지갑으로 인해 소비자와 판매자의 신속한 거래가 가능해졌고, 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지갑과 결제의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코카콜라는 사용자가 문자를 보내 결제를 할 수 있는 자동판매기를 설치했고,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휴대폰 결제 사례입니다. 이후 각종 모바일 송금 시스템과 페이 서비스, 디지털 지갑이 등장했습니다.
한 리서치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결제 시장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약 12%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에 따라 점차 현금 결제의 비율은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추세라면 당연하게도 현금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하지 않은 결제 수단이 될 예정입니다.
디지털 지갑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이 디지털로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로, 다양한 결제 방법 및 웹사이트에 대한 사용자의 결제 정보와 비밀번호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소프트웨어 및 시스템입니다. 개인 사용자는 디지털 지갑을 일반 지갑처럼 사용합니다. 디지털 지갑에 신용카드는 물론 각종 포인트 카드 정보와 쿠폰 등을 저장합니다.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비롯해 각종 디지털 신분증도 담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여러 정보와 기능을 담을 수 있는 디지털 지갑을 통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지갑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다른 국가의 친구나 가족에게 송금하거나 받을 수 있는 것인데요. 디지털 지갑은 실제 회사나 지점이 있는 은행 계좌를 필요로 하지 않고, 은행이 없거나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금융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기업 입장에서 디지털 지갑은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어 잠재적인 자산이 됩니다. 고객의 구매 습관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고객에게 더 효과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지갑을 소유한 고객을 대상으로 각종 마케팅과 이벤트는 물론 서비스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지갑을 제공하는 기업이나 도입한 기업은 사용자 확보와 함께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지속해서 추가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송금, 결제 등 기본 기능은 물론 최근 디지털 지갑은 아래와 같은 기술을 활용해 더욱 스마트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적용한 디지털 지갑은 사용자의 거래 내역을 파악해 맞춤형 금융 상품을 소개하거나, 저렴한 송금 수수료 등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지갑에 신원인증 기능이 탑재된 경우엔 안면인식 인증 시스템을 제공합니다. NFC를 활용하는 경우, 비접촉식 결제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NFC 근거리 통신은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이 근거리에서 안전하게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도록 하는 무선 데이터 전송 기술입니다. 현재 애플 페이(Apple Pay)가 NFC를 통한 비접촉식 결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법정 화폐나 신용카드 위주의 디지털 지갑을 암호화폐로 확장합니다. 신원인증과 보안 측면에서 블록체인은 개인 정보를 나타내거나 보호하는 데 활용 가능합니다.
미래 경제의 중심, 디지털 지갑
최근 금융 서비스 산업의 디지털화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온라인 뱅킹, 다음은 모바일 앱 뱅킹,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 지갑입니다. 미국 전자결제 기업인 월드페이(Worldpay)의 ‘글로벌 결제 보고서(Global Payments Report)’에 따르면 2023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전자 상거래의 절반 이상이 디지털 지갑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디지털 지갑 플랫폼이 생기고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지갑이 등장하면서 이커머스를 비롯해 비즈니스 및 구독 서비스 등에서 디지털 지갑의 수요는 계속 증가합니다. 디지털 지갑을 사용하면 기업은 물론 소비자에게도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높은 접근성입니다. 디지털 지갑은 스마트폰을 비롯해 태블릿, 노트북 등 대부분의 디지털 기기에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다운로드 받은 디지털 지갑은 뛰어난 확장성을 제공합니다. 디지털 지갑은 단순히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신분증에 항공 탑승권, 쿠폰, 콘서트 및 스포츠 경기 티켓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예방 접종 기록도 저장 가능합니다.
두 번째, 디지털 지갑은 고객에게 멤버십 프로그램이나 로열티 프로그램 등 추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의 디지털 지갑은 쿠폰이나 선불금 충전, 상품권 등록, 사이렌 오더와 같은 기능을 제공하는데요. 스타벅스의 로열티 프로그램 덕분에 스타벅스 모바일 앱을 통한 결제는 전체 매장 매출에서 약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편의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불편한 결제 프로세스는 많은 고객의 구매 결정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데요. 디지털 지갑은 다양한 결제 옵션을 제공해 속도와 효율성 측면의 장점을 입증했습니다. 사용자 친화적인 UI를 바탕으로 디지털 지갑에 보유한 현금과 신용카드, 암호화폐를 통해 온라인 결제는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빠르게 결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지갑에는 다양한 보안 장치가 적용됩니다. 사용자는 직접 결제 정보가 저장되는 방식을 결정하거나 비밀번호나 잠금장치 해제 설정을 할 수 있는데요.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악의적인 송금이나 결제도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지갑과 다르게 스마트폰을 분실하더라도 여러 개의 디지털 지갑을 백업하면 지갑 분실에 대한 걱정도 없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지갑은 여러 장점을 바탕으로 이미 우리 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법정 통화와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사용된 디지털 지갑은 향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로 발전할 전망입니다.
디지털 지갑 전쟁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디지털 지갑 회사로는 애플, 구글, 아마존, 삼성, 페이팔, 벤모 등이 있습니다. 애플은 애플 페이를 통해 디지털 지갑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음성 인공지능인 시리(Siri)를 이용할 수 있고, 애플워치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지갑이 자동차 키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항공권 티켓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가 자신의 카드 정보를 저장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결제가 가능합니다.
구글 지갑은 2011년에 등장했지만, 2015년 등장한 구글 페이로 인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사용자는 은행 계좌를 앱 계좌에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API를 활용할 수 있고, 안드로이드를 포함한 대부분의 구글 생태계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와 카카오, 삼성 등 대형 IT 기업은 디지털 지갑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각종 인증서와 증명서, 멤버십, 자격증 등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차별화 요소 기능을 계속 추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카카오 지갑 이용자는 2021년 1,0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이처럼 디지털 지갑 전쟁에 열을 올리는 것은 향후 성장 가능성 때문입니다. 쇼핑과 결제 서비스와 함께 핀테크로까지 확장하면서 사용자를 생태계에 락인(lock-in)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근 시중 은행들이 디지털 지갑 개발에 역량을 쏟으면서 경쟁이 심화된 것도 한몫합니다. 은행들이 은행 고유 업무에 생활 편의 서비스 등을 추가하면서 결제와 인증 영역은 물론 일반 서비스에서의 경쟁 역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지갑은 기존 기업과 서비스 간 경쟁과 함께 새로운 시장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디지털 지갑에서 향후 가장 크게 성장할 분야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입니다. 지금까지의 디지털 지갑 시대는 법정 통화를 담고 결제하는 결제와 이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NFT와 같은 디지털 자산을 디지털 지갑에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 지갑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습니다.
기존 디지털 지갑은 블록체인의 도입 혹은 새로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지갑과의 경쟁이라는 미래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지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블록체인 디지털 지갑인 메타마스크(MetaMask)는 2022년 2월 기준 3,000만 명이 넘는 월간 사용자를 기록했습니다.
큰 규모의 블록체인은 대부분 자체의 디지털 지갑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암호화폐를 송금하거나 거래하는 용도에서 그치지 않고 지갑을 매개체로 신원 인증을 비롯해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지갑은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De-Fi)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디지털 지갑 내에는 예금과 적금 기능도 있으며, 이자를 받기도 합니다. NFT와 같은 디지털 자산을 보관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송할 수도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지갑은 만들기는 어렵지 않지만, 기본적인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도는 필요합니다. 다른 암호화폐로 교환하는 과정과 디파이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난관들이 있습니다. 지갑을 백업할 수 있는 비밀 구문을 잃어버리면 지갑을 복구할 수 없는 점도 단점으로 꼽힙니다. 아직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지갑의 사용성과 대중성은 부족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전 세계 많은 기업이 디지털 지갑을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오는 2025년까지 디지털 지갑에서 나오는 지출 금액은 무려 10조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디지털 지갑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미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디지털 지갑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기존 디지털 지갑에 블록체인을 적용하거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지갑이 전통 금융 자산을 취급하는 등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글 ㅣ 윤준탁 ㅣ IT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