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
2025년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계신가요? 다사다난했던 올해, ESG 경영을 추진해 오신 여러분의 일과 삶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올해를 돌아본다면 어떤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바쁜 현업 속에서 놓쳤을 수 있는 ESG의 흐름과 디테일을 함께 짚어보기 위해, 이번 달 뉴스레터를 준비했습니다.
[목차]
l 들어가며. Anti-ESG의 시대, 다시 ‘경영’을 말하다
l 1. 간소화? 합리화! 선택과 집중 전략
l 2. 구체화, 기후변화를 넘어… ISO도 나선 자연자본과 인적자본 공시 표준화
l 3. 감시의 강화,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ESG 정보공개의 중요성
l 4. 사업장(공장)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의 ESG 요소에 대해 높아진 관심
l 5. ESG 데이터의 시대가 왔다. 공시를 넘어 의사결정 기반으로서의 데이터 활용
l 마치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Simplicity vs Complexity)
들어가며. Anti-ESG의 시대, 다시 ‘경영’을 말하다
올해 ESG의 글로벌 동향을 살펴보면, 우선 Anti-ESG 트렌드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는 예고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폐지되는 등, ESG와 반대되는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역시 옴니버스 패키지(Omnibus Package)를 통해 기존 정책의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옴니버스 패키지는 EU 그린딜(Green Deal)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된 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과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 또는 CS3D)의 적용 대상을 축소하고 도입 시점을 연기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이 조치는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 ESRS)에 따라 방대한 정량·정성 데이터를 준비해 온 기업 실무자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습니다.
완화된 안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EU 내외에서는 반대 의견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게다가, 지난 10월 유럽의회 법사위를 통과한 이후 본회의 표결에서 옴니버스안이 부결되며 시장에 다시 한번 충격을 주었으나, 지난 11/13 유럽의회에서 382표의 찬성으로 수정안이 통과되면서 연내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SG 관련 법제화 논의가 지연되면서 일부 기업은 불확실성 속에 조직과 예산을 축소하는 등 역행의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수의 기업은 법적 의무가 아니더라도 고객사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자발적 공시 확대, 공급망 리스크 평가, 현장점검 강화 등 실질적인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ESG 경영을 담당하는 우리는, 규제가 확정되기만을 기다려야 할까요? 혹은 연말을 맞이하여 연탄 봉사나 김장 나눔과 같은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며 ‘ESG를 실천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실 계획을 세우고 계시지는 않나요?
사회공헌은 ESG 중 S 사회분야의 책임을 실천하는 것으로서 ESG경영의 작은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비즈니스와 연관성이 없고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하는 지속적인 활동도 아닌 일회성 행사는 지양해야 합니다. 매번 강조드리지만, 우리는 ESG ’경영’을 해야지 ‘ESG’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환경과 관련된 나무심기나, 사회와 관련된 사회공헌 활동을 ESG경영의 모습으로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한 해를 돌아볼 때, 여러분은 ESG 경영 관련해서 어떤 업무를 수행하셨나요? 상반기에는 ESG 보고서를 작성하고, 하반기에는 평가 대응을 진행했으며, 중간에는 ESG 위원회를 운영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담당자들이 수행하는 일반적인 ESG 추진 업무입니다. 기업의 ESG 인력 채용공고를 봐도 이러한 업무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ESG 경영 추진 담당자라면, ESG를 둘러싼 경영환경의 시장 변화를 면밀히 살피고, 우리 회사가 직면한 또는 향후 맞닥뜨릴 리스크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다면 정량적 재무영향으로 산정하고, 구체적인 과제와 함께 경영진에게 보고하여 의사결정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후에는 관련 조직과 협력해 과제를 이행하는 것이 연간 주요 업무가 되어야 합니다.
연간 업무 흐름 역시 이러한 PDCA(Plan–Do–Check–Action) 사이클에 기반해야 합니다. 연말~연초에는 계획을 세우고(Plan), 연중에는 실행하며(Do), 분기·반기·연간 성과를 측정(Check)하고, 미흡하거나 고도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Action)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PDCA의 중요성을 다룬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의 ESG 흐름은 미국발 Anti-ESG 움직임과 유럽발 ESG(정확히는 지속가능성) 규제 완화로만 요약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는 그보다 더 다양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ESG 경영 환경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다시 살펴보며, 내년을 준비하는 인사이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올해 ESG 경영의 흐름은 1) 합리화 2) 구체화 3) 감시 강화 4) 제품 5) 데이터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간소화? 합리화! 선택과 집중 전략
EU는 2024년 11월 ‘부다페스트 선언’을 통해 경제공동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정책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지속가능성 규제의 간소화였습니다.
이와 함께 CSRD, CSDDD, Taxonomy, CBAM 등 주요 제도의 중복 규제와 과도한 보고 의무를 완화하는 방안을 ‘옴니버스 패키지’ 형태로 내놓았습니다. 이번 간소화안에 따라 중소기업 상당수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었는데, 이는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접근으로 평가됩니다. 최근 11월 13일 유럽의회가 옴니버스 패키지 수정안을 통과시키면서, 1년 넘게 이어졌던 간소화 논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관련 불확실성도 점차 해소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공시나 실사의 의무가 특정 사업장에만 국한되지 않고 연쇄적으로 협력사(중소기업)에도 영향이 미치기 때문입니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보면, ESG 경영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기업을 직접 규제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 관계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규제가 없더라도 이미 많은 기업이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데이터 제출이나 심사(Audit)를 요청받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요구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규제 당국 또한 감독 대상을 축소함으로써 행정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소수의 기업을 더 정밀하게 점검할 여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에 시간을 더 확보했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초부터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란 ESG 보고서 작성이나 평가 대응이 아니라, ESG 경영의 방향성과 전략 수립을 위한 중요성 평가(Materiality Assessment), 현황 분석, 과제 도출, 목표 수립까지 이어지는 내실 있는 준비를 의미합니다.
2. 구체화, 기후변화를 넘어… ISO도 나선 자연자본과 인적자본 공시 표준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 COP30)는 11월 10일부터 약 2주간 진행되어, 예정일을 하루 넘긴 22일 브라질 벨렝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회의는 파리협약 이후 각국의 기후목표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탄소시장 통합과 기후테크 혁신 등 새로운 감축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번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은 미국은 파리협약의 탈퇴와 재가입, 재탈퇴를 반복하며 반 기후 정책 기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의 기후공시 제도까지 중단시키며 이러한 흐름을 더욱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미국의 빈자리를 메울 것으로 기대됐던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도 약속한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1월 초 기준 ‘1.5℃ 목표’ 달성을 위한 보완 감축계획을 제출한 국가는 전체의 3분의 1에 그쳐, 주요 국가들 역시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사실상 침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COP30은 COP28에서 제시된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전환’ 방향성을 구체화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선진국의 개발도상국 대상 기후위기 적응 재원을 기존 대비 3배로 확대하자는 촉구와 이행 가속화를 위한 여러 이니셔티브 운영 방안이 결정문에 포함되며, 더딘 속도지만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한편 한국은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18년 대비 53~61%)를 확정하고, 11월 17일 국제 탈석탄 연대체 ‘탈석탄 동행(Powering Past Coals Alliance, PPCA)’에 가입했습니다. 기업은 이번 합의에 따라 변화할 국가 정책 흐름을 면밀히 살피고, 이에 맞춘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기후변화는 이제 ESG 경영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ESG 내에서 기후변화는 환경 중에서도 ‘대기(Air)’ 영역에 해당합니다. 환경에는 대기 외에도 ‘물(Water)’, ‘토양(Soil)’, ‘자원(Resources)’ 등 다양한 주제가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정리한 것이 자연자본(Natural Capital)입니다. 자연자본은 생물다양성(Biodiversity)과 연결됩니다.
기후 관련 재무영향 공시 지침인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CFD)와 짝을 이루는 형태로, 자연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NFD)가 등장하며 자연자본의 재무적 영향 공시를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TNFD는 LEAP(Locate–Evaluate–Assess–Prepare) 프레임워크를 내놓고 실무 적용을 위한 세부 지침을 개발 중입니다.
사회(Social) 영역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평등 및 사회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Inequality and Social-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ISFD)가 2024년 9월 출범하여, 2025년 말까지 프레임워크의 베타버전을, 2026년까지 최종 공시 프레임워크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한편, 국제표준화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ISO) 역시 ESG 관련 표준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환경(ISO 14001 등), 안전보건(ISO 45001 등), 사회적 책임(ISO 26000)에 이어, 최근에는 ESG의 핵심 주제인 인적자본과 자연자본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2024년 발간된 IWA 48:2024를 시작으로, 인적자본에 대한 보고(Reporting) 표준인 ISO 30414:2018을 폐기하고, 인적자본 공시(Disclosure) 표준인 ISO 30414:2025를 새롭게 제정했습니다. 또한, 조직의 자연자본 회계 원칙과 가이던스를 제시한 ISO 14054:2025도 2025년 10월에 발표되었습니다.
ISO가 글로벌 아젠다에 대한 국제 표준의 기준선을 제시해 왔다는 점에서, ESG 경영은 이제 글로벌 경영의 주류(Mainstream)로 편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미 몇 년째 이어져 온 흐름이지만). 기존의 환경·사회·거버넌스 분야별 ISO 표준에 더해, 자연자본과 인적자본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ISO의 최근 동향은 국제회계기준재단(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IFRS Foundation)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ISSB)가 제시한 S1(일반 요구사항)과 S2(기후 공시)를 넘어 S3(자연자본)과 S4(인적자본)을 준비하는 방향과도 일치합니다. IFRS는 자연자본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2026년 10월 전까지 내 놓는 것을 목표로 TNFD와 협업하겠다고 11월 7일 발표했습니다. (링크) 결국, 자연자본과 인적자본은 앞으로 피할 수 없는 외부 이해관계자의 핵심 아젠다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3. 감시의 강화,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ESG 정보공개의 중요성
ESG 관련 규제가 완화되거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국가가 IFRS ISSB 기준을 채택하거나 도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의 ESG 경영 관련 제도와 규제가 속속 마련되고 있으며, 시장 내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한 감시와 감독 또한 강화되는 추세입니다(국가별 도입 현황, 25년 6월 기준) 국내 역시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orean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KSSB)를 통해 ISSB 기준 정리가 이미 완료되었으며, 정부의 법적 근거 마련과 도입 로드맵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SG 경영의 정량적 성과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형태로 공개되면서, 시장과 감독기관의 감시 강도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EU의 유럽증권시장감독청(European Securities and Markets Authority, ESMA)은 그린워싱 감독을 2025~2026년 최우선 감독 과제로 선정했습니다. 특히 펀드 등 금융상품의 명칭에 ‘ESG’ 또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준수해야 할 친환경 및 사회적 요건을 제시했습니다. 영국의 경쟁시장국(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 CMA)도 2024년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2025년부터는 허위 또는 기만적인 환경주장에 대해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 또는 30만 파운드 중 높은 금액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강화했습니다. 이 밖에도 호주, 일본, 싱가포르, 인도 등 주요국이 그린워싱 방지 법안을 새로 준비하거나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발간한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과 공정거래위원회의 ‘환경 관련 표시·광고 심사지침(2023)’을 중심으로 그린워싱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2025년 9월에는 제품 환경성 표시 및 광고 길라잡이 개정판을 발간했으며, 공정위는 기만적인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개정해 2025년 10월 30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2023년 개정된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의 내용을 ‘기만적인 표시·광고 심사지침’의 일반 원칙으로 통합하면서 더욱 강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최근 프랑스 법원은 ‘토탈에너지스’의 탄소중립 광고가 허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그린워싱 금지법이 에너지 기업에 적용된 첫 사례입니다. 법원은 토탈에너지스가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표현이 소비자에게 친환경 기업으로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파리기후협약의 목표 달성을 위한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화석연료 기반 사업(석유·가스)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후 토탈에너지스는 판결을 수용하며 실제 성과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다만 소송 이전에 그린피스, 지구의 벗 등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와의 소통이 있었다면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링크).
이제 우리 기업들도 ‘2050 탄소중립’과 같은 표현이 구체적인 근거와 과학적 검증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시민단체는 물론, 소비자와 언론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시선이 매처럼 날카로워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사업장(공장)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의 ESG 요소에 대해 높아진 관심
제가 지속가능경영 컨설팅을 시작했던 2006년 전후에는 EU의 폐자동차지침(End-of-Life Vehicle Directive, ELV)과 유해물질제한지침(Restriction of Hazardous Substances Directive, RoHS)이 주요 아젠다였습니다. 당시에는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를 통해 제품의 환경영향을 분석하고 친환경성을 검증하는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ESG 경영이 화두가 되고, 기후변화 대응이 중점 관리 대상으로 부상하면서 주요 관심사는 사업장의 탄소배출량, 노동권, 인권, 자원순환 등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LCA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소비자와의 접점에 있는 제품의 ESG 측면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려는 동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디지털제품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DPP)입니다. DPP는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Life Cycle)에 걸친 주요 정보를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요구하는 유럽 규제로, 탄소배출량, 재활용성, 내구성, 수리 용이성, 소재의 특성 및 출처, 공급망 리스크 등을 포함합니다. 말 그대로 ‘제품의 여권’ 역할을 하는 이 규제는 제품이 국가 간 거래될 때 환경성과 공급망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소비자에게는 제품의 친환경성과 투명성을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합니다. 구체적인 법안은 논의 중이며, 2027년부터는 배터리 제품을 시작으로 섬유, 철강, 전자, 타이어 등으로 적용이 확대될 전망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규제의 초점이 사업장 중심에서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기업은 고객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제품의 ESG 측면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ESG 경영이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에 내재화되는 단계로 전환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의 담당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사업 또는 제품의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우리 회사 혹은 조직이 ESG 체계를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전략적 관점에서 점검해야 할 시점입니다. ESG 경영은 궁극적으로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통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5. ESG 데이터의 시대가 왔다. 공시를 넘어 의사결정 기반으로서의 데이터 활용
많은 기업들이 이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나 ESG 보고서에 팩트북 형태로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을 넘어, 그 데이터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서 발간 과정에서 각 부서가 데이터를 취합해 디자인에 반영하지만, 그 이후의 관리 체계가 미흡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데이터의 정확성과 일관성이 확보되지 않아 매년 수정을 반복하거나, 정량적 목표 설정 없이 단순 수집·보고에 그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기업의 ESG 데이터 관리 수준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구체화할 시점입니다.
ESG 경영의 목표를 수립하고 성과를 관리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PDCA 순환 과정 안에서 ESG 경영 활동의 결과를 데이터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세를 살펴보고 특이점을 발견하면 원인 분석을 통해 개선 과제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데이터를 성과 관리의 기준선(Baseline)으로 삼거나, 재무적 영향과 연계하여 관리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처럼 데이터는 ESG 경영의 기반(Infra)으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ESG 데이터를 보고서에 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는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에게 기업의 ESG 경영 수준을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투자자는 정성적 서술보다 정량적 수치와 추세 변화를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수준과 역량을 평가합니다. 따라서 기업이 제공하는 데이터는 비교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되어야 하며, 데이터가 어떤 범위(국내, 해외, 연결 기준 등)를 포함하는지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데이터의 검증 수준도 중요합니다. 외부기관의 제한적 검증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증빙 대사까지 포함하는 합리적 검증을 통해 수치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숫자로 표현된 ESG 데이터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 신뢰성이 지니는 무게감은 거래소에 공시되는 사업보고서의 재무 수치와 같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데이터의 신뢰성과 비교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최근 ESG 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대한 기업들의 문의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잇따른 회계 부정 등 금융 사고로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ESG 데이터에 대한 내부통제 기준 또한 국제 표준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트레드웨이 위원회 후원 기관 위원회(Committee of Sponsoring Organizations of the Treadway Commission, COSO)는 2023년에 『지속가능성 보고를 위한 내부통제 보고서(Internal Control over Sustainability Reporting, ICSR)』를 발표했습니다. 부제인 ‘Building Trust and Confidence through the COSO Internal Control—Integrated Framework’에서 드러나듯, 신뢰와 확신을 구축하기 위한 내부통제 프레임워크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ESG 데이터 내부통제 체계 구축에 착수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재무 부서에는 이미 익숙한 COSO의 원칙을 ESG 데이터 관리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ESG 담당자는 재무 부서와 협업해 향후 공시될 데이터의 관리 규정과 업무 절차를 논의하고, COSO 원칙 기반의 내부통제 설계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속가능성 공시 과정에서 내부통제 체계를 혁신적으로 설계·운영하기 위한 핵심 요소, 이해관계자 간 상호작용, 리스크 관리 및 통제활동의 순환 과정은 아래의 도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Simplicity vs Complexity)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내년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악프다’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바로 미란다 편집장입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인데요. 영화 속에서 미란다는 컨셉의 변화를 위해 여러 개의 비슷한 색 벨트 중 하나를 고르며 고민합니다. 그 모습을 본 앤드리아(앤 해서웨이)가 피식 웃는 장면이 있죠. 그러자 미란다는 앤드리아가 입은 낡은 파란색 니트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일반인이라면 단순히 ‘파랑(Blue)’이라고 부르겠지만, 그 색은 ‘셀룰리언 블루(Cerulean Blue)’이며, 그 뒤에는 심오한 배경과 역사, 그리고 인기를 끌어 수익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악마 같은 편집장의 이야기가 가득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은 19세기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 로’와 ‘구스타브 플로베르’ 등 여러 예술가들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원래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라는 긍정적 의미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세부 사항에 숨겨진 문제나 어려움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변형되어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목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역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SG 경영이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단어 자체에만 집중하며 다소 단순하게 접근했습니다. 텀블러 증정 행사, 임직원 봉사활동, ESG 위원회 설치, 여성 이사 선임 등 단발적인 이벤트 중심의 활동을 추진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보도자료를 통해 외부에 알리며 소통해 왔습니다.
그러나 ESG경영은 이처럼 단발적인 이벤트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입니다. 실제로 자세히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법규와 제도, 기준이 광범위한 맥락과 분야에서 제시되고 있으며, 그 속에는 세부적인 문제와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ESG 데이터 또한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 다른 복잡성과 의미를 지닌 다양한 ‘파란색’들과 같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터러시(Literacy) 역량이 필요합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올해의 ESG 경영 동향을 1) 합리화 2) 구체화 3) 감시 강화 4) 제품 5) 데이터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각 키워드의 디테일을 살펴보시며, 남은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의 준비 방향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명품을 비롯한 패션 산업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치밀한 디테일이 숨어 있습니다. ESG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단순히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멋진 옷’처럼 생각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집중한다면 정작 중요한 문제를 놓칠 수 있습니다. ESG 경영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부분까지 꼼꼼히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SG 담당자는 끊임없이 변화의 흐름을 살피고, 학습하며, 회사 안에서 그 지식과 통찰을 널리 전파하는 ESG 경영의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ESG 경영을 이끌어 가시길 응원합니다. ‘ESG경영의 성패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올해의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2025년 LG CNS ESG 뉴스레터, 어떻게 보셨나요? 올해 12월은 잠시 쉬어가며, 내년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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